Radio Head 이야기 3
이세용1999-05-04 15:21조회 0
Radio Head 이야기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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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The bends의 작업시작..)
1993년 12월까지 수많은 투어를 한 Radiohead는 93년도 12월까지
해왔던 James 의 유럽투어의 서포트를 마지막으로 93년도의 모든
활동을 마무리 지었다. 그리곤 그들은 94년부터는 새로운 앨범의
제작을 시작했다.
이미 알려진대로 1994년의 시작과 함께 Radiohead는 어느
그들의 2집 작업을 위해 과일농장의 창고를 빌려다가 리허설
스튜디오로 사용했다. 멤버들은 이시기가 기억에 남는 좋은
시기들중 하나였다고 하는데. 생각해 보면 아무런 생각 없이,
걱정 없이 음악을 연습하며 그 와중에서 음악을 만들어낸다면
그것은 역시 큰 행운이자 기쁨일 것이다.
그들은 이미 1집 활동 당시부터 여러가지 곡들을 작곡하였고
1집을 발매하고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2집 발매때는 1집과 비교해서
여러가지 면에서 발전한 모습을 보인다. 그들의 완성도 높은 2집
앨범의 기초는 1집 발매이후부터 천천히 다져져 왔다.
Radiohead는 런던 북부에 위치한 RAK 스튜디오에서 그들의 2집을
위한 레코딩을 시작하였다. 그들의 프로듀서로는 John Lekie가
새로이 영입되었고 엔지니어와 어렌인저 등의 스튜디오 세션은
RAK 스튜디오의 스태프 들이 참여하였다. 이중에는 후에
OK Computer 등의 프로듀서로 참가하는 Nigel Godrich 등도 있다.
John Lekie는 당시 Ston Roses 의 프로듀서를 맡은 경력이 있었고
XTC라는 음악 잡지등 에서 집필을 한 경력도 있었다. Leckie가
당시 Radiohead와의 프로듀싱 계약을 맺은 이유로는 하나의 보컬과
무려 3개의 기타 그리고 베이스, 드럼 으로 이루어진 특이한
라인업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라고.....하지만 Parblo Honey에
대한 Lekie의 평은 앨범이 너무 소란스럽다 (Too noisy) 였다..
그리 순조롭지 못했던 1집의 앨범제작 경험에 비해서 2집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을까? 결코 그렇진 않았다. (-_-;) RAK 세션과 밴드는 잦은
의견차이를 보여왔고 그 무엇 보다도 Thom과 Lekie와의 의견차이가
가장 심했다. RAK 세션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도저히 Thom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고... 또한 당시 레이블에서는 그들의
2집을 가을시즌에 발매하기 위해서 조금씩 압력을 가했었다고...
Radio Head가 스튜디오 작업시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보다도 그들이
Pablo Honey 라는 앨범과 Radio Head로 알려진 밴드가 아니라 Creep이라는
곡을 부른 밴드로 알려졌다는 것이다. 2집 레코딩 당시 밴드에게 가장
큰 압력을 준것은 그들에게 제 2의 크립을 원하던 주변인들과 팬들의
생각이였다.
Jonny는 2집의 레코딩할때 각각의 여러 파트과 여러 트랙에 특별한
사운드를 집어 넣기위해서 다른 종류의 앰프와 기타등을 사용하는데
여러시간을 잡아 먹었다. 결국 그는 그가 계속해서 사용해왔던
기타와 앰프로 녹음을 끝마칠수 있었다.
(엔지니어가 제일 싫어하는 부류의 뮤지션 -_-;)
Nigel Godrich는 당시 RAK 스튜디오의 엔지니어는 Radiohead와
함께했던 작업엔 즐거움도 있었고 좋았던 시간이였지만 Radiohead는
항상 무언가에 압력을 받고 있었으며 특히 Thom의 경우에는
스튜디오의 환경이 그로 하여금 음악 작업에 심취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던것 같다고 말했다. 멋진 레코딩을 하기 위해선 엄청난
고통과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당시의 Radiohead는 멋진 레코딩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레코딩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였다.
Thom 은 프로듀서인 Lekei에게 지금 자신이 무언가를 해야 하는지
어느정도 파악은 되었지만 그것을 계속해서 해야 할지는 도저히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밴드에서의 자신의 위치와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야 하며 이런 상태로는 더이상 작업을 할 수
없다고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결국 몇곡의 레코딩만을 끝마친 상태에서 밴드는 스튜디오를 떠났고
그들은 새로운 영감과 휴식을 얻기 위해서 호주지역을 시작으로 아시아
투어를 시작하였다.
그들은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 영국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공연을 하는데
팬들의 반응은 그들의 기대 이상이였다. 1집 발매후 그들에겐 수많은
고정 팬들이 생기게 된것이다. Radiohead는 1994년 5월 24일에는 영국
맨체스터에서 그들의 영국 공연을 시작하였다. 5월 27일 런던에서 가진
Live at Astroria는 MTV에서 촬영을 해갔는데 이 공연은 아주 잘된
훌륭한 공연으로 나중에는 Radiohead의 유일한 정식 Live Vidio Clip으로
발매되기도 했다.
결국 그들의 외도는 다시금 그들에게 에너지를 주었고 그들이 예전부터
원했왔었던 그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게 해주었다. 다시금 그들은
나머지 레코딩 작업에 몰두 할 수 있었다. 그들이 이번 투어로 배운것은
투어때부터 전문적인 음향기기가 설치된 밴을 가지고 다니면서 그 안에서
꾸준히 음악 작업을 하는것이다. 이때부터 그들은 투어도중에 새로운
곡들의 제작에 들어가게 되었다 나중에 자세히 다루겠지만 3집의 대부분의
곡들과 앞으로 나올 4집의 대부분의 곡들은 Radiohead가 투어 도중에
만들어낸 곡들이다.
6월 16일 그들은 Thom의 고향인 Oxfordshire 에 위치한 Manor Studio에서
RAK스튜디오에서 중단했었던 2집의 레코딩을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그들은
Lekei와 다시금 작업을 하였고 RAK스튜디오에서 비교적 죽이 잘맞았던
세션들을 불러와서 앨범의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밴드는 그들이 여지껏 가져왔었던 Creep이라는 대곡으로 부터 야기된
부담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2집의 제작을 할 수 있게되었다.
앨범을 제작하면서 그들로써는 빠질 수 없는 2개의 중요한 페스티벌에
참가하였다. Glastonbury Festival과 Reading Festival에 참가하여 그들은
조만간 시중에 발매할 자신의 My iron lung 싱글에 대한 광고도 해가면서
그들의 명성을 키워갔다. 특히 Thom은 93년도 Reading Festival에 참가
했을때 목에 이상이 생기는 바람에 제대로된 연주를 하지 못했는데
그 후에 Reading Festival에 참가하게 되면서 당시의 실수를 만회할 수
있었다.
8월달에는 그들은 모든 녹음 작업을 끝마쳤고 Abbey Road Studio에서
프로듀서인 Leckie가 그동안 녹음했었떤 곡들의 마스터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무렵 London's Astonia Live에서 가졌던 공연의
My Iron Lung을 라이브 자체로 싱글컷 하였다. 혹시 모르실 분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Radiohead 2집에 수록된 My Iron Lung은 Astoria
Live에서 연주한 바로 Live 곡이다. 다시한번 들어보시라 Live라고
는 믿기지 않은 그 섬세한 사운드.
이 싱글은 당시 23위 까지 올랐다가 순위에서 사라져 버렸으나 다시금
8개월뒤 Radiohead의 2집이 시중에 나오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다시 싱글 순위에 부활해 10위까지 오르게 된다.
사실상 마스터링의 경우 모든일은 프로듀서가 담당하게 되고 밴드는
할일이 없게 된다. 자신들의 일을 끝마친 밴드는 8월 8일부터
"Ten day tour (10일 공연)" 이라는 이름으로 영국공연을 시작하였다.
"이 곡은 에전의 Creep하고는 전혀 딴판이군..."
" Creep과 같은 부분이 하나도 없잖아..."
My iron lung을 싱글컷하게 되고 그들이 모든 공연에서 My iron lung을
부르게 되면서 부터 팬들의 반응은 주로 이런쪽이였다. 특히 그러한
반응은 미국에서 더욱 심했다. EMI의 스텝진들이 영국에서 발매된
My iron lung 싱글을 미국의 EMI 산하 유통업체인 Capitol사의
직원들에게 보여줬을때 그들은 그러한 의견을 얻게 되었다. 어찌되었던
시범적으로 20,000개의 My iron lung의 EP를 제작, 미국의 대학가 등지로
퍼트렸고 20,000장의 모든 EP가 팔리게 되자 Capitol은 본격적으로 LA,
샌프란시스코, 워싱턴 DC 등의 Radio Head의 Pablo Honey가 잘나갔었던
지역의 레코드 소매점에 대량의 EP를 공급하였다.
이런 시기인 94년 11월 밴드는 처음으로 멕시코를 순회하며 2집을 위한
공연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때 밴드는 처음으로 멤버간의 큰 의견차를
보이며 한때 해산의 위기도 가졌었다고.....
몇년뒤 Thom이 가졌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몇년간 같이해왔던 활동 중간중간에서 있어왔던 사소한 일들 사소한
감정들이 어느날 한번에 폭발하고 말았었죠. 그동안 우리는 차츰 차츰
서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게 되었고 서로 자주 만나지도 않았었죠
그리고 어느날 갑자기 모든것이 폭발하게 되었죠...그순간 우리는 서로
싸웠고, 욕을 했으며 울었죠...잠시간 서로 만나지도 않았답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해산하지는 않았죠...우리에겐 무언가 공통의 주제가
있었거든요..."
드디어 2집의 앨범의 모든것이 완성된 무렵인 1995년 2월 25일 그들은
2집 앨범 완성 축하 공연을 가지게 되었다. (발매 축하 공연이 아니라
완성 축하 공연) 영국의 권위있는 음악 잡지 Melody Maker에서는 그들의
공연에 대한 리뷰에서 지난 1집때와는 비교도 안될정도의 칭찬을 하였다.
Melody Maker지에서는 Radio Head의 음악을 " 날씬한 (-_-;) 소년들의
훌륭한 곡"이라고 칭하였고 특히 Thom의 발전한 카리스마에 대해서
서술하였다.
2집 The Bands의 제작에 있어서 밴드의 멤버들은 수많은 혼란을 겪었
었다고 한다. 그들이 2집 제작을 끝마친뒤 그들의 앨범에 대한
소감을 옮겨 보았다.
Thom:
이것은 우리의 모든 반응이였다.....이것은 빈정거림과 창피함이였고
이 앨범것엔 아무런 센스도 없다. 그리고 당신은 마지막에 가서야
무언가가 잘못 다고 느낄것이다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모를것이다.
Ed :
우리가 1집을 2년동안 연주한뒤 청중들은 어쿠스틱 종류의 음악을
듣기를 원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2집이 또다른 Radiohead의
락 음악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렇긴 하지만 우리는 2집에서
팬들의 의견을 약간 수렴하여 좀더 큰 소리의 기타를 집어 넣었다.
Ed :
많은 이들은 우리가 Creep part 2를 만들기를 원했었다. 그렇지만
나는 우리가 그런일을 할 수 있을런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Creep
을 만들었을땐 운이 좋은것도 있었다.시간의 흐름같은 느낌들을
모으는것....우리는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을 자각하고 있었다.
Creep part 2를 만드는것은 계획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2집 레코딩을 시작할때 우리는 12개의 강한(Strong) 음악을
만들려 했고 22개의 음악을 레코딩하였다. 2집 제작후 사람들의 우리
에대한 그러한 기대 (Creep part 2)는 줄어들었다.
오랜 기간동안 기다려온 Radio Head의 2집은 드디어 1995년 5월달에
발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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