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기 전에 이별하기
캐서린2005-01-05 06:51조회 399추천 10
"나를 사랑하세요. 진심으로 사랑하세요.
부서져서 가루가 되고 먼지가 될 만큼 나를 사랑하세요."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러자 그 곁을 감싸고 있던 노란 빛의 온기가 가까이에 기댄 나의 얼굴을 뿌옇게 흐리기 시작했다. 눈썹이 가늘고 부드럽게 두세번 씰룩거렸다. 나는 잔뜩 긴장해서 무슨 말을 해야할지, 눈은 어디로 향해야하고 손은 어디에 놓아야할지 도무지 생각할 수가 없었다. 머릿속이 아찔해지면서 눈 앞으로 희멀건하게 피가 고였다. 또 한번 눈썹을 씰룩였다. 그러자 그녀가 희미하게 웃었다. 뚜렷한 윤곽이 없고, 소리도 분명치 않은 웃음이다. 빛의 명암에 따라 변하는 그녀의 얼굴을 나는 단지 마음으로 느낄 뿐이었다. 나도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이빨 사이로 작은 떨림이 전해져온다. 그녀는 입 안으로 '휴'하고 가는 한숨을 올리는가 싶더니 내 손을 꽉 부여잡고 다시 말을 이었다.
"벌써 손이 차갑네요."
나는 고개를 크게 떨구었다.
그녀의 목에서 꼴깍하고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입을 연다.
"사랑이 영원하다고 믿을 때까지만이라도, 꿈이라도 좋다고 생각할 때까지만이라도, 나를 안고 키스해도 부족하다고 느낄 때까지만이라도...."
갑자기 그녀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잊고 말았다.
내 머리 뒤로 작은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잠시 뜨거운 온기를 머금고 있던 눈물은
작은 냉기를 거두면서 나의 귓등을 타고 턱밑으로 떨어졌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그 때 까지만이라도 나를 사랑하세요."
그녀가 우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분명 행복해야 마땅할 상황이지 않은가.
나는 고개를 들어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꽉 다문 눈꺼풀 사이로 눈물이 삐져나와 뺨위에 흥건히 번져 있었다.
"당신을 사랑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 같네요.
영원과 꿈을 생각하지 마세요. 키스와 포옹을 바라지 마세요.
우리는 단지 지금을 함께 하고 있을 뿐이에요.
내일을 시작하기 전에 이별을 느끼지 마세요.
행복을 가지기 전에 슬픔부터 안지 말아요.
지금 당신 곁에 내가 있는 이유는 이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니까요.
당신이 이 모든 것에 만족한다면 나는 당신을 사랑할 것입니다.
두려움이 없다면 눈을 뜨세요."
하지만 그녀는 눈을 뜨지 않았다.
그녀를 적시고 있는 노란 불빛을 몸으로 막으며,
잠시나마 눈 위에 작은 그림자를 드리워본다.
아래 야경이 훤히 보이는 커다란 동산 위의 하늘,
그리고 그 아래. 나와 그녀를 둘러싸는 작은 공간이 만들어진다.
휘파람을 불듯, 바람이 조용한 소리를 머금고
우리의 공간 안으로 불어온다.
바람은 그녀의 얼굴 위에 붙은 눈물을 훔치고
나의 그림자는 좀 더 길어져 그녀의 몸을 보듬는다.
몇 분의 시간이 흐르고나서 나는 일방적으로 키스를 했고, 그녀는 눈을 떴다. 서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지금을 함께 살고 있다는 것. 휘파람 같은 바람을 함께 맞고, 노란 불빛이 만들어준 공간에 함께 서 있다는 것, 과연 그녀가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아니면 나 자신이 그런 사실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여러가지 슬픔과 행복, 이별과 만남이 머릿속에 차오르면서 시간이 지나가는 것이었다.
이 글의 주인이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