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였는지 그 지난주였는지.
무심코 TV채널을 돌리다보니 이윤기 선생님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예전에 어떤 라디오 방송에 출연했다가 눈물이 앞을 가려 다 읽지 못했다는 리진 시인의
'나무를 찍다가'라는 시를 읽어주셨다. 여전히 눈물을 참지못하고 울먹이면서. "나무를 심자!"
채 1연이 끝나기도 전에 눈시울이 붉어지는 이윤기 선생님을 보면서 내 마음도 아련해졌다.
그러나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삶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 반성. 또 늘 그러한 고민과 반성을 품어왔던 세월들.
그런 것들이 가슴속에 쌓이고 쌓여야만이
나태했던 양심을 일깨우는 작은 시어 하나에 통곡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아직 몇 해 살아보지 못해서일까? 그 시간들을 그냥 어리석게 흘려보내서일까?
하긴 내 존재에 대해, 내가 무엇을 해야할지, 나를 위해 당신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할지
진지한 성찰의 시간을 갖았던 적이 얼마나 있었는가. 난 눈물을 흘리지 못했다.
어제는 지난번 이윤기 선생님이 잠깐 모습을 보였던 바로 그 프로그램
- "TV, 책을 말하다" - 에 '장정일 소년'이 나왔다.
(장정일은, 왠지 내겐 기형도가 대구에 내려가 만났던 소년 장정일의 이미지로 각인되어있다.)
TV에서 그의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였다. 의외였다.
촬영 스튜디오에 직접 나와서 인터뷰를 하던 그의 눈은 왠지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이 보였다.
소년이니까... 무서웠을 것이다. 아무리 그에게 호의적인 방송이더라도 그에겐 심판의 무대다.
그의 섬세한 고백이 공중파를 타고, 아직도 도처에 존재하는 가부장적 권력에게 노출되는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그 스스로 예전의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가는 것을 느끼면서,
그래서 자기는 아이를 가지지 않을 생각이라는 얘기를 하는 대목에서 그의 눈시울은 붉게 물들었다.
난 저렇게 '진짜 눈물'을 볼 때마다 부끄러움을 느낀다.
눈물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다.
진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들,
진짜 눈물의 공포를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나무를 찍다가
-리진-
그는 난생 처음
한 아름 거의 되는 나무를
찍어 눕혔는데
그 줄기 가로타고 땀을 들이며
별 궁리없이
송진 냄새 끈끈한 그루터기의
해돌이를 세었더니
쓰러진 가문비와 그는
공교롭게도
동갑이었다
한 나이였다
누가 심었을까
이 나무는?
혹은 저절로 자랐을까?
자라오며 이 나무는
무엇을 보았을까?
무엇을 하였을까?
얼마나 더 자랐을까
이 나무는? … 꼬리 물고 떠오른 궁리궁리는
마침내 그의 가슴속에서
소리 없는 외침으로 터져 나왔다.
나무를 심자!
그 외침 속에 그는
자기도 몰래
삶에 대한 자기의
모든 사랑
모든 애수를
부어 넣었다.
자기가 심지 않은 나무를
찍어 쓰듯이
반생도 더 살아 오지 않았는지
갈피없이 더듬으면서
소리없이 거듭 외쳤다.
나무를 심자!
눈물 흘리는 사람
철천야차2005-01-14 10:29조회 386추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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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개
검은별2005-01-14 14:12
좋은시네요 :)
Experimental2005-01-14 15:06
장정일씨의 시, 소설을 읽어본적은 없지만. 어제 그 프로그램을 보고 외관상, 정말 진솔하고, 순수 한 사람 같다는걸 느꼈어요. 특히 목소리.
시아2005-01-14 15:39
이 책 재밌지 싱긋..녹색 표지였는데 제목의 "꽃"밖에는 생각이 안나네.
람2005-01-15 07:35
나도 장정일씨 나온거 보구 그 섬세한 떨림;; 과 생각들에 약간 감동했다는..
(실은 친구에게 방송보자마자 전화로. 장정일씨 팬이되었다! 라고 외쳤음...^^;)
흣 거짓말의 작가! ; 라고만 알고있었는데 말이야..
(실은 친구에게 방송보자마자 전화로. 장정일씨 팬이되었다! 라고 외쳤음...^^;)
흣 거짓말의 작가! ; 라고만 알고있었는데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