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P씨
캐서린2005-03-13 12:15조회 483추천 2
그는 꼭 한 번 더 질문해서 확인하는 습관이 있다.
누군가가 어떤 행동을 취하면 놀란 마음에 공을 울리며
'네?' 하고 되묻 듯 상대방에게 정말 그걸 할거냐고 질문한다.
'정말 뭐뭐 하시겠습니까?' 라는,굉장히 사무적인 말투지만
자세히 곱씹어보면 상냥하고 배려적인 구석도 몇몇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예, 아니오라는 간단한 단답을 유도해낸다는 게 너무나도 마음에 든다.
남에게 행동의 이유를 묻는 경우는 없는데 그것은 아마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라는 속담을 상기시켜주는데에만 주념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멈추는 것도 괜찮으니까 다시 한번 생각해봐라. 정말 마음씨가 곱다.
최대한 상대방의 프라이버시를 지키는 가운데 은근히 책임을 묻는 P씨가 사랑스럽다.
간혹 자신의 생각을 밖으로 표출하기도 하는데, 그것 역시 자신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고 있다.
당신이 정말 이런 행동을 하려거든 내가 몇가지 카드를 줄테니 하나만 골라라, 그는 이렇다.
그리고 간단명료한 카드를 꺼낸다. 대표적인 예로는
'대기모드' '끄기' '다시 시작' 이 있다.
난 대부분 끄기를 선택하지만, P씨의 배려에 감탄해서 가끔은 다시 시작도 선택한다.
카드는 각기 색깔이 다르고, 그 때문에 고르는 맛이 풍부하다.
하지만 그렇게 상냥한 P씨도 화가 나면
그 누구보다 무섭고, 달래기가 어렵다.
배려심이 사라지고, 남에게 선택권도 주지 않는다.
아예 부재상태일 때도 있는데, 그럴때 그는 자신의 화를 풀 수 있도록 일말의 조건을 주고 사라진다.
그 조건은 대개 암호화되어-파란 배경의 종이 위에-있어서
특별한 암호표를 보지 않으면 도저히 풀 수가 없다. 그렇게 P씨는, 한편으론 무섭다.
그는 아마 그가 아니라 그녀인 것 같다.
여러가지 재질로 몸을 감싸고 있지만 왠지 그 성별을 파악할 수 있다.
한 때-아마 2000년도 쯤-그는 정말 화가 나서 얼굴이 검게 변해 있었다.
나는 내가 딱히 무슨 잘못을 한지 몰라
몇차례 억지로 달래보려 애썼지만 그는 막무가내로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몇가지 선물을 보내기로 했다.
내가 마련한 선물은 아주 투명하고 맑은 창문들이었다. 그것도 98개나 준비했다.
나는 수줍게 말하면서 그것들을 선물했고, 그녀는 그제서야 환하게 웃어주었다.
다만 기억상실로 인해 이전의 기억을 깡그리 잊은채였다는게 흠이긴 했지만,
그녀가 반짝반짝 빛나고 아름다운 창문들에 취미가 있다는 것을 안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했다.
요즘에 그녀는 욕심이 좀 많아져서
창문들을 2000개나 달라고 떼를 쓰기도 하고
세계의 창문들을 전시한 엑스퍼레이드에 가고싶다고 속을 내비치기도해서
이래저래 속상하다. 친절한 P씨가 이렇게 변해버리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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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개
D2005-03-13 12:26
푸흐흐흐흐;;
luvrock2005-03-13 15:57
그 친절한 피씨가;; 혹시 귀가 좋지 않은것은 아닐까요? 그냥 그럴수도 있다는 생각이...
아침2005-03-13 16:26
창문을 닫고 애완동물을 선물해보는 건 어떨까요? (퍽)
ypie2005-03-14 05:44
나만의 p씨는 맨날 골골하지요
면역력은 제로에다가
굼뜨고...
면역력은 제로에다가
굼뜨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