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모으는 디젤 운동화 중 그 첫번째 것, 기억하고 싶어서 남긴 신발 박스,
거기에 내가 여지껏 받은 편지들, 내가 쓰고 보내지 못한 편지들을 보관하는데
꽉 차서, 정리하면서 읽어봤다.
정말 놀라워 내가 이렇게 글을 잘 쓰다니!
다시 읽어보고 혼자 감탄하고
그렇게 굉장히 우스운 하루를 보내면서
내가 편지를 제대로 옮겨 적기 전에 끄적인 종이 하나를 발견했는데
그 종이엔 3명의 사람을 상대로 각기 다른 내용을 동시에 적은 그런 끄적임이 그려져 있었다
친한 선생님, 알게 된지 얼마 안 된- 더 알고 싶었던 친구, 그리고 나보다 15살 많은 유부남 친구.
학교에 대한, 관계와 사랑에 대한, 영화에 대한, 데리다와 현대 철학에 대한, 아픔과 견딤에 대한, 끌로드 샤브롤에 대한, 폴 오스터의 난잡한 글 솜씨에 대한(나쁜 뜻이라기보단 정말 단어 그대로 이 사람 너무 난잡하게 써), 내가 좋아하는 툴루즈 로드레크의 선과 마티스의 색에 대한, 나인 인치 네일스에 대한,
정말 경계 없이 정말 정신 없이 쓰면서 내 생각을 정리해갔던 그런 기억들이 스쳐갔다
생각해보면 난 정말 할 일 없는 아이였나보라고
웃으면서 그렇게 다시 정리했다
사실 그 디젤 운동화 케이스를 정리한 것은
아파서 집에 틀어 박혀 있자 심심하고 지겨워서.
근 2주? you can say so, 이번 2월달은 정말. 제대로 하지도 못하는 술을 끌어 안고 살았다
마치 스무살이 되면 꼭 해야하는 것처럼, 거의 그런 의무감에 마셨던 것 같다
달리 할 일도 없고, 담배를 배우기엔 너무 귀찮고 돈 아깝고,
친구를 만나 그 아이 가자는 곳 따라 가면 어느새 술집 앞이고 막 그랬으니까
(더군다나 나의 그나마 친하다고 할 수 있는 어떤 한 아이가 사귀는 남자 아이와의 트러블로 거의 격일에 한 번 날 불러내서 같이 마셔준 것 같다)
음.
아무튼 그래서 1월에 한 번, 그리고 엊그제 어제에 걸쳐 2월에 한 번,
몸살을 앓았다
감기는 하도 자주 걸려서 내가 스스로 조심하다 보니 나의 피곤함이 몸살로 온 것 같다
지난 한 주간은 정말 7일 중 5번 정도, 쏠려서 뱉어내고 또 마셔댔으니 당연한 것일지도;
(이건 내가 그렇게 많이 마신 것이 아니라 내가 정말 술 마시는데 젬병이라는 것- 주량도 소화 능력도 다 바닥을 친다)
몸살을 앓으면,
그 느낌이 굉장히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괴로우면서도 좋다
뭔가 침대에 그냥 그렇게 계속 있어도 되는 괜찮은 변명거리도 되고,
무엇보다도 내가 나약해졌다는 그 느낌이 너무 좋다
어렸을 때의 생각을 떠올리게 해준다
어렸을 적 아플 때의 느낌이 생생하게 떠올라서,(매우 자주 아팠다)
지금의 나와, 과거의 내가 그 느낌을 공유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가 그 때의 무언가를 아직 쥐고 있다는 착각?
아니 그 때를 기억한다는 어떤 증명이라도 되어서 그런 것일까,
좋아.
언제나 너무 강해지고 싶었고
강함을 동경하고 부러워했는데
잠시 그 부러움에 틈을 주고 공식적이며 정당한 루트로 나약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좋다
몸살을 앓을 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어떤 것.
나약함에 관하여.
나약함이 극도에 이르렀을 때, 한바퀴 돌아 다시 강해질 수 있다는 걸 난 아직은 믿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