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벨
캐서린2006-07-09 03:17조회 428추천 5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에 귀를 갖다대고 여보세요.
"여보세요"
저쪽에선 말이없다.
공기의 작은 울림만 기묘한 음악처럼 연주되고 있을 뿐이다.
나는 다시 말한다 '여보세요'
"나야"
나야는 자신의 이름을 나야,라고 소개한다.
작고 허스키한 목소리다. 냉수라도 한컵 건네고 싶은 음색이다.
"누구시라구요?"
의례 그랬듯이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이런 류의 전화에는 퉁명스럽게 상대해주어야 빨리 일을 끝맺을 수 있고
그런 나의 행동이 나야에게도 타박을 주어서 일찌감치 쫓아낼 수 있는 길이란 것을.
"나야"
나야. 나야는 더 힘을 주어서 말한다.
도대체 누구일까 '나'는.
이마 위로 치솟은 핏줄 안에서 '나'에 대한 궁금증이 혈액을 타고 흘렀다.
장난전화의 결말은 매번 그랬다.
당시에는 화가 나지만 마지막에는 묘한 궁금증만이 남았다.
나는 말했다.
"이름을 말해야지."
다시 한번 퉁명스러운 순간이었다.
반말과 함께 '성함'이라는 존대를 버리고
'이름'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점은 그에게 커다란 충격을 줄 것이다.
게다가 화를 낸 듯한 이 굉장한 음량은 뭐란말인가.
새삼스레 나에게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이다. 그와 동시에 전화기에선
뚜 뚜 뚜 뚜 뚜 전화가 끊어졌다.
여태까지 나는 누구와 통화한 것일까.
나라는 존재는 과연 누구일까. '나'가 있기는 한걸까.
정말로 '나'가 존재한다면 나는 방금 내 자신을 쫓아내버린 것이다.
옆에 친구가 말했다. '누구야?'
"응... 나" "뭐?" "방금 '나'랑 통화했어." "그래? '나'가 뭐라는데?"
"나는 '나'야. 그냥 똑같아."
내 자신에겐 하루에도 몇번씩 바뀌는 인격이 살고 있다.
그것은 나보다 강하고 나보다 말이 많다. 그래서 항상 그에게 진다.
하고 싶은 말을 양껏 내뱉는 그 앞에서 나는 무릎을 꿇고 말았다.
어제는 그녀 아닌 그녀에게 말을 토해버렸다.
정말 토하듯이 말해버렸다.
"사랑해" 라고 말해버렸다.
또다른 '나'의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나에겐 이미 사랑이 있었다. 사랑해라고 말할 번지가 틀린 것이다.
왜 '나'는 다른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을까. 나는 그녀를 좋아하게 될까.
아니면 단지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또다른 나를 만든 것일까.
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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