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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Gogh2006-08-23 13:18조회 322추천 1
거실에 앉아
회식을 하고 돌아와 소주냄새를 솔솔 풍기는 동생의 '열 올리며 선임씹기' 에 맞장구를 쳐주다 지쳐
아빠는 책을 읽고, 나는 복숭아를 깎고, 엄마는 신문을 보고
그 옆에서 아직도 선임씹기에 열을 올리는 동생의 재잘거림이 아빠의 한 마디에 묻혔다.

-우리 입양할까. 여자얘로.
-아빠는 딸이 둘이나 있으면서 모질라? 차라리 남자어때 꽃미남오빠로다가. 흐흐흐
-딸키우는 재미가 더 좋아
-아빠가 아들은 언제 키워봤는데?
-친구들 말이 그래;;

아빠와 나의 이런 대화 사이에 엄마가 기가 막히다는듯.

-이제 얘들 다 키워 놓고 좀 놀러다닐만 한데 또 얘를 키우라고?
:: 실로 엄마는 동생이 취직을 하고 내년 봄 학기 대학원 준비를 하느라
임시 백수직으로  자의반타의반으로 집안일을 돕고 있는 나로 인해
친구들과 친목계다 여행이다 놀러다니고 계신다 ::
-엄마는 괜히 민망하게 농담에 민감하기는
-농담아냐

우리의 이런 대화를 들은 건지 듣지 못한건지 듣지 않은건지
동생은 여전히 소파에 대자로 누워 선임욕을 하다  
아무도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며

마치 브레히트의 연극을 보듯
거실 중앙에서 짹짹거리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아빠 회사에서 후원하는 곳에 갓 낳고 버려진 아기가 있는데 지난달에 다녀오는 차 안에서
예쁘고 사람도 잘 따르고 울지도 않았던 아직 이름도없는 그 아기가 이쁘다고
우리 식구들의 삼십분 화제가 되었던 그아이를 우리는 잊었었는데
아빠는  안쓰러운게  계속 눈에 밟힌다고 하신다.
조금있으면 일도 정리하고 얘들도 다 지들 살길 바쁠텐데 적적하니까
데려다 키우면 어떻겠냐고  
평소 로맨티스트에 장난꾸러기 청년같은 아빠의 눈이 진지하고 신중하게 빛나는게
그냥 별생각 없이 하시는 말씀 같지는 않다.


평소  입양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남들에게 말해오던 나는

지금 우리 아빠가 52세. 엄마는 45세.
얘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아빠가 60세 엄마가 53세.
내가 스물 넷인데 혹시라도 내일 운명적인 그이를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되고 아이라도 낳게 되면
::사실본인은 24년째 아직까지는 독신주의자이다::
이모랑 조카랑 한살차이.


이렇게
가슴이 미쳐 움직이기 전에 머리가 먼저 움직여 버려
아빠의 말에 힘을 보태주지 못하고 복잡해졌다.


한국으로 돌아오던 비행기 안에서
스웨덴으로 입양을 갔다가 한국에 가족을 찾으러 간다는 사람을 만난적이 있었고
유럽으로 입양가는 아이를 "배달" 해주는 일을 맡으면
비행기삯을 아껴 두달일정의 여행이 세달 일정이 될 수도있다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남'의 일이었다.

남의 일에는 가슴이 먼저 움직여 지는데

'나'의 혹은 '우리'의 일에 머리가 먼저 움직여 지는게 못내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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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초코머핀군2006-08-23 14:27
전 멋진 아버지를 두신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 쉽지 않을텐데요.
아마 딸 시집가면 그 공허감도 생각하시지 않으셨을까.
전 정말 멋지다고 생각됩니다. 참 따뜻한 이야기예요. ㅠㅠ
맨날 신문 읽으면 이놈의 나라 망하는구나.. 생각드는데..

상Q2006-08-23 15:19
아 역시 멋진분이셨군아 .
키도크시고 그연세에 체중도 불지안으신분에 풍기는인상이 여유있어보이셔서 .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자네가 지희 데려다 줬나?"

Q "네..."

"그래- 수고했네 ."


두마디밖에 못해봤지만 .
궁금한게 꽤 많으셨을텐데 저말만 하신걸보고.. 참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말야 .
Tabitha2006-08-24 13:47
멋진분이시네요. +_+.
Gogh2006-08-25 07:51
Q/거 우리 아빠 컨셉.
젊은 남아에게는 무한한 경쟁심을 보이는 아직 청년이라니까 크큭
★★★★☆2006-08-25 15:15
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