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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

철천야차2006-08-26 09:08조회 429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


잠자는 일만큼 쉬운 일도 없는 것을,
그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어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는
밤 1시와 2시의 틈 사이로
밤 1시와 2시의 공상의 틈 사이로
문득 내가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 그 느낌이
내 머리에 찬물을 한 바가지 퍼붓는다.

할말 없어 돌아누워 두 눈을 멀뚱하고 있으면,
내 젖은 몸을 안고
이왕 잘못 살았으면 계속 잘못 사는 방법도 방법이라고
악마 같은 밤이 나를 속인다.





오규원의 시를 읽는다.

오래 전에 읽었던 시를 다시 읽으면 새롭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내가 생각하는 "어른이 된다는 것"의 바람직한 모습.
그것은 그저, 오랜만에 다시 읽는, 별 의미없이 보이던 시가 내 마음 속에 깊이 사무치게 되는 것.
낭독하고 나면, 나를 저 바닥 끝까지 끌어내려서 아무 말 할 수 없게 만들어버리는 시가 늘어나는 것.
그런 것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냥 딱 그런 것이었으면 좋겠다.

술을 마시는 것, 담배를 피는 것,
늦은 시간 술자리에서 고등학교 친구들과 만나 누구는 즐겁고, 누구는 기죽고
쓰잘데기 없는 얘기, 큰 목소리로 떠들다가
어쨋든 돈을 많이 벌어야 된다는 의견에 만장일치하는,
꿈을 잃어버린, 어떤 패배주의적인 분위기가 지배하는 대화에 익숙해지는...
그런 것이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길 빈다.








감자의 몸 / 길상호


감자를 깎다 보면 칼이 비켜 가는
움푹한 웅덩이와 만난다
그곳이 감자가 세상을 만난 흔적이다
그 홈에 몸 맞췄을 돌멩이의 기억을
감자는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벼랑의 억센 뿌리들처럼 마음 단단히 먹으면
돌 하나 깨부수는 것 어렵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뜨거운 夏至의 태양에 잎 시들면서도
작은 돌 하나도 생명이라는
뿌리의 그 마음 마르지 않았다
세상 어떤 자리도 빌려서 살아가는 것일 뿐
자신의 소유는 없다는 것을 감자의 몸은
어두운 땅 속에서 깨달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 웅덩이 속에
씨눈이 하나 옹글게 맺혀 있다
다시 세상에 탯줄 될 씨눈이
옛 기억을 간직한 배꼽처럼 불거져 있다
모르는 사람들은 독을 가득 품은 것들이라고
시퍼런 칼날을 들이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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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0

담요2006-08-26 10:04
어느 영화에서 그러더군요.
산다는 것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을 늘려가는 거라고.
가끔은 너무 쉽고,
가끔은 너무 어려워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아무렴 어때,
라는 생각도 들구요.

시, 좋네요.
wud2006-08-26 19:40
열대야라서~
muse2006-08-27 08:03
저도 그래요. 문득 잘못 살고 있는것 같아요. :(
리드2006-08-27 10:04
전 왕창 어긋나 버린 인생~
todd2006-08-27 16:25
술을마셔.흐
luvrock2006-08-28 01:42
그래도 수긍해야하는 그런 .거지.
철천야차2006-08-28 05:21
모르는 사람들은 독을 가득 품은 것들이라고
시퍼런 칼날을 들이댈 것이다
남금자2006-08-28 06:37
좋네요..... 시.. 좋은글 감사합니다 (..)
악!!2006-08-28 07:23
잘못살고있는것 자체가 잘 살고 있는겁니다..
그렇게 느끼고 있는거 자체가 잘 살고 있다는걸 보여주는 겁니다..
자기가 어떻게 사는지도 모른체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주위에 얼마나 많습니까??

야차군은 참으로 잘 살고 있는겁니다..
잘못과 잘은 딱 한글자 차입니다..
Belle&Sebastian2006-08-28 15:26
이야 시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