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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담요2006-11-22 15:24조회 507



나의 두번째 조카.

2006년 9월 25일, 08시 13분에 사내 아이로 태어나셨다.

이름은 아무래도 '김연범'으로 확정된 모양.

연우와 연범.



연범이에게 확실히 알려줘야겠어.

누나에게 당하지 않고 사는 방법을 말이야.

나는 네 엄마에게 좀 많이 당했거든.



-2006년 10월 8일의 일기-







오늘 아침 엄마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나는 또 늦잠을 잤나 싶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시간은 8시.

분명히 내가 늦잠을 잔 것은 아니다.

엄마를 바라보니, 엄마는 일그러진 얼굴로 울고 있었다.

연범이가 죽었대.

연범이가 죽었대.

연범이가 죽었대.

이 말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내가 잘못 들은게 아니라면, 연범이는 내 조카다.

내 둘때 조카가 죽었다는 소리다.

정신이 혼미해졌다.

엄마는 병원에 간다며 아빠와 함께 집을 나섰고,

나는 멍한 얼굴로 '나도 조금 있다가 갈께' 라고 말했다.



집에 혼자 남겨진 나는 무엇을 해야되나 생각하다가,

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실장님, 제 조카 연범이가 죽었대요.

미련하게도 자다가 숨이 막혀 죽었대요.

아직 100일도 안되었는데, 죽었대요.

내 입으로 그렇게 소리내어 말하고도,

정작 나는 그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넋이 나간 채로 무엇을 해야하나 다시 생각하다가,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내 방의 침구류를 정리하고,

쓰레기통을 비우고,

청소기로 먼지를 빨아들이고,

설겆이를 하고,

안방의 널부러진 옷들을 정리하고,

침구류를 정리하고,

작은방의 침구류를 정리하고,

그러다가 벽에 걸린 족자를 보았다.

거기에는 누나와 매형,

그리고 연우가 환하게 웃고있는 얼굴이 담겨 있었다.

아직 연범이가 태어나기 전이다.

순간 울음이 터졌다.

하염없이 목놓아 울었다.



한참을 울고나서 병원에 가려고 하는데,

이제 모두 집으로 갈테니 오지 말라는 전화가 왔다.

그래서 나는 겉옷을 입은 채로 멍하니 앉아 울고 있었다.

2시간 정도가 흐르고, 다시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점심을 먹으러 왔으니 나도 오라는 전화였다.

전화를 건 엄마의 목소리는 평정을 찾은 듯 싶었다.

음식점까지 걸어가면서 생각했다.

엄마의 목소리가 평소와 같은 걸 보니 다 괜찮아진 모양이야.

연범이는 고비를 넘기고 살아난 모양이야.



찾아간 음식점은 추어탕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었다.

그 곳에 엄마와 아빠, 누나와 매형이 앉아 있었다.

모두의 눈가는 말라 있었다.

역시 다 괜찮아진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니-

그 눈들은 메마른 채 텅 비어 있었다.

그 뿐이었다.

촛점을 잃은 채 깜빡이는 눈과,

말을 잃은 채  굳게 닫힌 입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식사가 나왔다.

추어탕은 무슨 요리던가.

먹어본 적이나 있었던가.

아무 생각 없이 삼켰다가는,

입 천장이 죄다 데일 정도로 뜨거운 추어탕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말없이 그 추어탕을 삼켰다.

건너편 테이블에서 노랫 소리가 들렸다.

생일 축하곡이다.

박수 소리가 이어진다.

그렇게나 식욕이 좋던 매형은 그만 숟가락을 놓는다.

더 많이 먹어 두라는 엄마의 말에 마지 못해 다시 숟가락을 잡는다.



식사가 끝나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가 누나의 가슴을 붕대로 칭칭 감는다.

이제 젖을 물릴 아이도 없는데 젖이 계속 나오는 모양이다.

이제 젖을 물릴 아이도 없는 것이다.

다시금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그리고 모두는 잠을 청했다.

자고 일어나면 이 모든 일들이 꿈이었다는 사실에 안도하길 바라며.



그러나 그 바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매형은 누나를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엄마는 눈물을 훔치며 내게 말했다.

보나마나 둘이서 집에 가면 통곡을 할 거라고,

연범이의 물품들을 보며 통곡을 할 거라고, 그렇게 말했다.



연우는 잠시 친할머니 댁에 맡겼다고 한다.

연우는 동생을 꽤나 좋아라 했다.

연범이의 이름을 큰 소리로 외치고는 했다.

보나마나 연범이는 어디 갔냐고 물을텐데.

엄마가 울자 멋도 모르고 따라 울었던 연우다.

동생이 죽었는지도, 죽는게 뭔지도 모르는 연우다.

보나마나 목놓아 연범이를 부를 연우다.



술 생각이 간절해졌다.

친구를 호출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마주앉은 우리는 술잔을 기울였다.

애써 웃으며 연범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천만다행이야.

연우가 죽는 것보다는 낫잖아.

나도 이런 소리가 할 말은 못된다는 거 알아.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는 거지.

긍정적으로.

연범이가 연우처럼 재롱도 부리고,

삼촌이라고 부를 줄도 알았다면 어떻겠어.

연범이의 재롱이 눈에 밟히고,

연범이의 목소리가 귀에 밟혔을 거 아냐.

이번 주말에 누나네는 가족 사진을 찍으려고 했대.

그 걸 미리 찍었더라면 어떻겠어.

단란한 네식구가 사진 속에서나 가능한게 된다면.

그거 정말 끔찍한 거잖아.

난 연범이 자는 거 밖에 못봤어.

맨날 잠만 잤어.

그래서 내가 그랬어.

이 놈은 어떻게 죽은 듯이 잠만 자냐고.

그랬는데, 진짜로 죽어버리는 건 뭐냐고.

지가 얼마나 사랑을 많이 받았는데.

맨날 잠만 자더니, 이젠 아주 작정하고 자려는 거잖아.



누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누나, 뭐라고 말을 해야될지 계속 생각해 봤는데, 모르겠어.

어떤 말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

그냥 이겨내길 바란다고 말할래.

내가 누나랑 매형이랑 연우랑 다 사랑하는 거 알지.

앞으로는 행복해질 거야.

누나는 그럴 자격이 있잖아.



누나에게서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누나랑 매형이랑 연우랑.

연범이의 이름은 차마 적을 수가 없었다.

적을 수가 없어서 또 다시 눈물이 났다.



내일은 화장을 하러 간단다.

내일은 참지 못할텐데.

모두의 눈은 다시 젖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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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하루종일2006-11-23 01:08
잘보내주고 와..
눈큰아이별이2006-11-24 14: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