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너의 도시
Rayna2007-06-02 11:48조회 821추천 5
빗소리가 똑똑 떨어지는 절간 처마 밑에서 책을 읽었다. .. 딱 여기까지만 쓰면 그런대로 매력적인 풍경이었을텐데, 아무래도 파트너를 잘못 골랐다.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 세상에. 무슨 만화책도 아니고, 소설 하나 들여다보기 위해 비닐포장을 뜯어내기는 난생 처음이다. 욱하는 마음을 뒷편에서 지켜보고 계신 관세음보살(;;)의 자애로운 '덕'을 빌려 떨쳐내고 50여 페이지를 읽어내려간다. 책을 덮고 뒷표지의 이런저런 '찬사'들을 훑어내린 뒤, 그제서야 마침내 이어지는 감탄사 한 마디. "아하.. 신발."
그래. 무얼 염두에 두고서, 무슨 내용을 어떻게 써내려갈 것이며, 그 문장들 사이사이마다 어떤 수사와 복선들을 놓을 것인지. 그들을 통해 자신이 글로서 녹여내고자 하는 생의 통찰이란 무엇인지 - 그야 전적으로 '작가'의 재량에 달린 일이겠다만. 그 의도가 어땠든 간에 "서른을 향해 달려가는, 혹은 이미 서른 언저리에 자리잡은 쿨~한 그/녀들의 진짜 속사정"을 말못해 안달난 소설들은 이미 수요한계선을 뛰어넘어 베스트셀러 서가에까지 인플레를 일으키고 있지 않느냔 말이지.
"내 삶에 네비게이션이라도 달렸으면 싶다"며 "서른두 살. 가진 것도 없고, 이룬 것도 없다. 나를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도 없고, 내가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도 없다. 우울한 자유일까, 자유로운 우울일까. 나,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무엇이든?"하고 심경을 토로하는 모습. 최대한 양보해서 '순수'하게 바라보려 해도 수 번째 맞선을 헛탕친 기분도 풀겸 GQ에도 실렸을 법한 레스토랑에서 삼 만원짜리 정식을 주문하고, 명동 거리의 직판 매장에서 쇼핑을 하다 80만원짜리 프라다 폰으로 걸려온 전화를 받으며 "그런대로 먹고 살만은 한데 뭔가 사는데.. 낭만이라는 게 안 느껴져. 아무 의욕도 안 나고.. 몰라, 암튼 사는게 지겨워. 나 이대로 계속 살아도 될까" 하는 푸념의 이미지와 묘하게 겹쳐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김윤아식 "유리가면" 만큼이나 얕은 인식틀을 덮어두려는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정도로 '프랜차이즈화'된 인생담을 보겠다고 비닐포장에 별책부록까지 뜯어내야 했던 일, 별로 유쾌하지 못한 경험이었다.
책을 덮어 밀어두곤 전 부치는 시늉이나 부리며 쓸데 없는 투정이나 쏟아내기 시작한다. 아하하, 그럼. 미친게지. 그 와중에도 "무언가를 향해 열을 다해 빠져들 만한 대상을 못 찾겠다"는 구실 좋은 핑계는 항상 마련해둔다. 디트리히 슈바니츠의 "교양"같은, 간간히 들춰보기도 좋고 목침이나 흉기 대신 써도 좋을만한 녀석도 있지만, 그런 책은 어디까지나 머리 싸매고 손으로 짚어내려가며 대해야 할 대상이지 순수하게 '빠져들 만한' 대상은 못된다. 어디 요즘 읽을 만한 소설책 없나요..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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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4개
지낙2007-06-02 12:05
잘 살고 있어?
elec2007-06-02 12:11
필터링해야할 것들이 너무 많은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정이현씨 소설은 안 읽어봤지만. 음. 뭔가 느낌이 오는구만. 그 사람이 쓴 다른 글을 보고 가져왔던 '편견'이 대충 맞아들어가는 느낌인데.
개인적으로는 낸시 랭도 비슷한 느낌.
'프랜차이즈화'된 감수성. 너무 싫다. 너무 싫어
정이현씨 소설은 안 읽어봤지만. 음. 뭔가 느낌이 오는구만. 그 사람이 쓴 다른 글을 보고 가져왔던 '편견'이 대충 맞아들어가는 느낌인데.
개인적으로는 낸시 랭도 비슷한 느낌.
'프랜차이즈화'된 감수성. 너무 싫다. 너무 싫어
secret2007-06-02 13:52
티셔츠가 군대에는 택배가 안된다네요. ㅜㅜ
소포로 붙여야하나봐요. 기달려요~~~ ^^
소포로 붙여야하나봐요. 기달려요~~~ ^^
센조켄2007-06-02 14:26
전 재밌던데.. 꼭 드라마 보는 느낌이라서요~~
물론 깊은 삶의 통찰력따윈 없지만...
그냥 그런데로 살아가고 있는 아가씨의 삶이랄까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구요~~
갠적으로 일본 소설들 보다 정서에 더 맞더라구요~~
물론 깊은 삶의 통찰력따윈 없지만...
그냥 그런데로 살아가고 있는 아가씨의 삶이랄까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구요~~
갠적으로 일본 소설들 보다 정서에 더 맞더라구요~~
양파링2007-06-02 15:38
써브젝트에는 달콤한 너의 도시로 되어있는데요.
괜히 딴지거는 사람.. ㅎㅎ
죄송.. :)
괜히 딴지거는 사람.. ㅎㅎ
죄송.. :)
Rayna2007-06-03 03:09
지낙 / 내년 이맘때면 '잘 살고 있다'는 말을 해볼 수 있겠지.
일렉 / 잘 모르던 분야를 파고들려니 암초가 너무 많다. 끙.. 잘 살고 있어? :)
시크릿 / 으아 고마워요 정말. 소포 오거든 마구 자랑해야지.
센조켄 / 일상의 나열도 좋지만 그 지점에서 더 나아가질 못하고 글 전체를 무정형의 연속들로만 꿰어냈던 게 제게는 다소 안좋은 인상으로 다가왔었답니다. '일본 소설'들은 어떨런지..
양파링 / 나름 의도했던 '제목'인데; 굳이 밝히자니 또 민망합니다 흐-
일렉 / 잘 모르던 분야를 파고들려니 암초가 너무 많다. 끙.. 잘 살고 있어? :)
시크릿 / 으아 고마워요 정말. 소포 오거든 마구 자랑해야지.
센조켄 / 일상의 나열도 좋지만 그 지점에서 더 나아가질 못하고 글 전체를 무정형의 연속들로만 꿰어냈던 게 제게는 다소 안좋은 인상으로 다가왔었답니다. '일본 소설'들은 어떨런지..
양파링 / 나름 의도했던 '제목'인데; 굳이 밝히자니 또 민망합니다 흐-
포르말린2007-06-03 11:58
요즘 소설은 아니지만, 김애란 작가의 '달려라 아비'
사라 워터스의 핑거스미스
정도면 충분히 읽을만한 소설이라고 추천할 수 있을 듯 하여요.
둘 다 읽었을지도.
어찌 됐든 나도 절간 처마 밑에서 소설 읽는 풍류를 누리고 싶다;
사라 워터스의 핑거스미스
정도면 충분히 읽을만한 소설이라고 추천할 수 있을 듯 하여요.
둘 다 읽었을지도.
어찌 됐든 나도 절간 처마 밑에서 소설 읽는 풍류를 누리고 싶다;
★★★★☆2007-06-03 17:40
엽엽엽 오오오
★★★★☆2007-06-03 17:42
전 그래서 에쿠니 가오리가 싫드라구요
나나2007-06-03 18:38
글 재미있게 읽었어요 우하
철천야차2007-06-04 04:02
내가 군대 있을 때 읽었던 소설들... 기억이 가물가물...
야간비행(=.=;;), 한강의 소설들(몇 번 얘기한듯?)
크리스토프 바타이유(다다를 수 없는 나라, 시간의 지배자)
은밀한 생(이건 아침군 아버님이 추천해주신... 소설도 아니고 수필도 아니여..;;)
좀비색채짙은 소설들;(골렘, 되풀이...) 그 외 변태소설들 지금 기억 안남
야간비행(=.=;;), 한강의 소설들(몇 번 얘기한듯?)
크리스토프 바타이유(다다를 수 없는 나라, 시간의 지배자)
은밀한 생(이건 아침군 아버님이 추천해주신... 소설도 아니고 수필도 아니여..;;)
좀비색채짙은 소설들;(골렘, 되풀이...) 그 외 변태소설들 지금 기억 안남
ACDC2007-06-04 04:42
한강의 소설을 추천
눈큰아이별이2007-06-04 10:35
히야.....절간에서 책이라...
Rayna2007-06-06 06:03
다들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