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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우주인

캐서린2007-08-04 07:39조회 512
오랜만에 큰맘먹고 일본어를 공부했다.

교재는 여자친구가 소포로 보내주었던,
"소학교 3년 한자 특별 트레이닝 (합격 스티커 포함)"
이라는 연습장이다. 둘째 페이지까지 풀다가 접은게 꼬박 2년 전.

모르는 한자가 출현할때마다 사전을 펼친다.
사전은 낡았다. 아버지가 회사원시절 쓰시던거라,
안에 들어있는 단어도, 문장도 모두 80년대에서 멈춰있다.
훅,하고 바람불면 글자들이 모두 날아가버릴 듯 애처롭다.

필요한 단어를 찾다가, 문득 내 이름을 확인하고 싶어졌다.
내이름을 일본어로 부른다면 어떤 어감일까.
나는 '사'항과 '요'항으로 가서 한글이름과 일본어이름을 조합한다.

책장은 잘 넘겨지지 않는다. 손가락에 침을 묻히면
세네페이지가 한꺼번에 딸려온다. 공부하는 것도, 노동이다 어떻게 보면.

스이요우, 내 일본어이름은 그렇게 불리운다.

뭔가 습하고, 혀가 유난히 긴 뱀과 같은 이름, 이라고 느껴졌다.
그러고보니 내 얼굴은 삼각꼴이다. 뱀의 머리도 삼각형이다.
몸에서 소름이 돋았다. 단순히 느낌과 연산이라는 머릿속의 유희일뿐이지만
일본어,라는 언어에 뱀과 내가 일치하는 부분이 있음에,
나는 크게 당황스러워서 사전을 덮어버렸다. 그리고 그것을 프랑스어 사전 위에 포갰다.

스이요우, 라는 일본어가 뱀의 또와리같이 생경했다.
그래. 나는 일본에선 뱀이 되는 셈이었다. 쉭쉭거리고 낼름거리는.

뱀. 팔다리가 없고, 비늘, 혀로 느끼고, 삼키고, 독이 있고,

초록색으로 빛나는 뱀이 천장을 타고 책상으로 내려온다.
프랑스어, 일본어, 국어 사전을 거쳐 3년 트레이닝을 지나 내 팔까지.
뱀은 내 팔을 허락도 없이 앙문다. 나는 찌릿하게 고통스럽다.

그리고 아찔함을 느낀다. 우주공간에 둥실하는 듯한.

뱀의 이빨은 나를 우주로 내려다놓는다. 텅비고, 휑하고,
발디딜곳 없는 공간 한복판이다.

그곳에서 나는, 수양도 스이요우도 캐서린도 트얄피도 아닌 것이 된다.
그저, 하나의 물체, 움직이는 것, 소리내는 것, 팔다리가 있는 것.

"뱀. 팔다리가 없고, 비늘, 혀로 느끼고, 삼키고, 독이 있고,"

처럼, 나 역시 '인간'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뱀은 알려주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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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채소나무유령2007-08-05 08:33
그 독은 이슬을 머금었기 때문에 입안에 머무는 탓이렵니까
양파링2007-08-07 16:05
캐서린이 보이네요 글속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