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적은 처음이다.
우리 일가에서는 이런 일이 없을 줄 알았다.
아. 읽는 분들의 용이한 맥락 파악을 위해 현재의 상황을 간략히 서술할 필요가 있겠다 생각한다.
우리 아버지는 3남 6녀의 막내아들로서, 효와 의리를 굉장히 중요시해왔고, 때문에 형제간의 우애를 매우 귀중히 여기는 분이었다.
외국에 나가있는 형이 가끔씩 귀국할 때마다, 형과 나의 관계에 대해 여러가지 말씀을 해 주셨고, 그 덕분에 그나마 형과 내가 서로 척을 지지는 않는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고 여긴다.
그런 이야기는 당신의 일상생활에 있어서도 지켜졌기 때문에, 아버지는 형제들과의 우애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여, 큰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에는 순종하였고, 나이드신 할아버지도 극진히 모시는 편이었다. 그래서 명절만 되면 가까이 사는 큰아버지 댁에 가서 차례도 드리고 친지들도 만나는, 지극히 '일반적인' 관계가 형성되어있었다.
문제는 사소한 곳에서 시작되었다.
몇달 전 일이다.
할아버지를 모시고 살던 큰어머니는, 항상 도시생활에 대한 향수를 그리며 살고 계셨다. 큰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에, 큰아버지는 상당히 많이 가지고 있던 부동산을 헐값에 처분하고 내가 살고 있는 도시로 옮겨오셨다. 그런데, 이곳의 집값은 예전의 그것이 아니었고, 부동산을 처분하고도 결국 조그만 주택 하나밖에 얻지 못하게 되었다.
이 집에서 큰아버지의 자제들인 나의 사촌형제 삼남매와 큰아버지 내외, 그리고 할아버지가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였다. 할아버지는 결국 둘째 큰아버지의 집에서 얼마간 지내기로 하였고, 형편이 나아지게 되면 큰아버지께서 다시 모셔가는 것으로 이야기가 되었다.
그런데 큰어머니는, 둘째 큰아버지와 우리 아버지에게는 알리지도 않고 32평의 아파트를 구입하여 살림을 꾸렸다. 할아버지와 큰아버지 가족이 함께 살기에 턱없이 모자란 크기였던지라, 약속은 어느새 깨지게 되었고, 거기에다가 몸이 좋지 않은 둘째 큰어머니의 수술까지 겹치는 바람에, 부득이 할아버지는 우리 집에서 모시게 되었던 것이다.
이리저리 떠도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화가 난 아버지는 큰아버지의 집에 가 대판 싸웠고, 그로 인해 형제간의 우애는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우리집에서 몇달 간 유숙하시던 할아버지는 둘째 큰어머니의 몸이 회복된 뒤 다시 둘째 큰집으로 돌아가셨고, 이번 명절은 갈갈이 찢어지고 말았다.
할아버지만 불쌍하게 된 것이다. 우리 집에 계실 때도 '늙으면 죽어야지' 하면서 하늘만 바라보고 계실 때가 많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많이 안타까웠다. 사시면 얼마나 더 사신다고 이런 꼴까지 보셔야 되나...
물론 내가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니라서 하는 얘기일 수도 있다.
방금 어머니의 속을 긁어놓는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어머니도 어머니 나름대로 고민과 괴로움이 크셨을텐데, 내가 적절치 못한 언행으로 부모님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고는 생각한다.(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내일 아침 밥상에서 어머니에게 어떤 사과를 해야할 지 고민하고 있다.) 부모님도 나름대로 나에게 많이 부끄러우셨을 터이다. 그래도 부모님은 우리 집에서 할아버지께서 계셨던 그 몇달 동안 어느 효자 못지 않은 극진함으로 할아버지를 모셨다. 그런 모습을 보면 우리 부모님도 싫은 소리 듣기는 굉장히 억울하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보다 훨씬 더 긴 세월동안 맏며느리라는 이유로 할아버지를 모시는 데 일생을 바쳐온 큰어머니의 마음도 여자로서 충분히 가능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둘째 큰어머니는 좋지 않은 몸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를 극진하게 모셨다.
딱히 누구를 욕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나는 당황스럽다. 지금까지 이런 적이 한번도 없었을 뿐더러, 여기저기 떠도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는 것이다. 얼마남지 않은 말년을 이렇게 좋지 않은 모습 속에 보내고 계신 것. 누군가를 탓해야 하겠지만, 딱히 누군가의 일방적인 잘못이랄 수도 없는, 그런 이상한 상황이다.
차라리 피하고 싶다. 이보다 더 따갑고 아픈 가시방석이 없는 듯 하다.
다만 20년 뒤에, 30년 뒤에 내 모습은 어떠할지, 현재의 상황을 반면교사로서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뿐이다.
또한 어떻게든, 지금의 상황이 훨씬 나아져서, 할아버지께서 행복한 말년을 지내다 가시기만을 바랄 뿐이다.
명절인데
elec2007-09-23 15:28조회 408추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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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개
wud2007-09-23 17:31
그런 면에서 튀김군이 앞으로 온 가정을 더 화목하게 만들어야겠다
tubebell2007-09-24 00:43
명절은 왜 꼭 그렇게 아픈 것까지 다 끄집어내는 시간이어야 하는지...
양파링2007-09-24 15:41
잘 해결 됐으면 좋겠네요.
왠지 뜬금없지만 저는 긴 연휴 뒤에 오는 후유증을 생각하면..
벌써 겁나요. ㅜ.ㅜ
왠지 뜬금없지만 저는 긴 연휴 뒤에 오는 후유증을 생각하면..
벌써 겁나요. ㅜ.ㅜ
철천야차2007-09-25 09:50
꼬인 문제들 다 잘 풀리길 빈다~
secret2007-09-26 10:48
동감되는 내용이네요.
모두가 자녀였고 가족이였기때문에 누구한테도 책임을 돌릴 순 없을것같아요.
다같이 상의해서 서로서로에게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야 될듯하네요.
예를들어 큰집에서 모시되,,,
자녀 9명이 10마넌씩만 내도 90마넌이니 도우미아줌마를 구하셔도 되고...
할아버님 노후가 행복했음 좋겠네요...
모두가 자녀였고 가족이였기때문에 누구한테도 책임을 돌릴 순 없을것같아요.
다같이 상의해서 서로서로에게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야 될듯하네요.
예를들어 큰집에서 모시되,,,
자녀 9명이 10마넌씩만 내도 90마넌이니 도우미아줌마를 구하셔도 되고...
할아버님 노후가 행복했음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