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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2008-01-23 07:25조회 491추천 2
컬럼비아 매장의 규모는 대략 30평
삼면이 상품 진열대로 꽉 막혀있고 나머지 한면인 입구는 대리석 기둥이 쇼윈도를 떠받히고 있는 형태다.
우리 매장은 별관에 위치해있는데, 별관의 이름은 '런앤런 Run&Run'.
손님에게나 직원에게나 통용되는 멋드러진 문구가 아닐수없다.
"고객님, 얼른 뛰어서 저 물건을 사세요, 오늘이 마지막 세일이예요"
"캐서린 직원, 얼른 뛰어서 저 물건을 찾아오세요, 고객님 기다리세요"
왠지 스포츠전문관에 걸맞는 본래의 의미는 알아보기 힘들어졌다.
정말로, 뛰지 못하면 경보라도 해야하는 곳이 백화점이다.  

본관과 별관으로 나뉜 백화점은 2002년 월드컵 직후 개점한 신식 건물로, 동네 품위에 걸맞게 고급한 냄새를 풍긴다. 나와 같은 날 들어온 다른 매장 형은 곤충학계의 파브르처럼 '백화점학'에 대해 유식하게 떠벌렸다.
"그러니까, 영등포백화점에서 고객 한분께 물건 하나를 팔려면 족히 1시간은 걸려,
옷을 엄청나게 많이 입어보거든. 꼼꼼하게 따지기도 하고.."
"헌데 여기는 그게 아니라서 편하지. 가격표도 안보고 물건 사가는 사람만 몇명인데"

이번주 일요일까지 행사기간이라서 나는 매장에서 조금 멀지 않은 곳에 매대를 놓고 물건을 판다.
'골라골라'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잘 어울리실 것 같은데 입어보고 가세요' 정도의 호객행위는 해야한다.
'행사'라는 이름값만큼 매상을 올려야하는 것이다. 백화점도 하나의 정글이었다.
나는 정글 안에 한마리 가냘픈 톰슨가젤이고.

어제는 단골아줌마 한분이 매대 위를 무당처럼 온통 헤집고 나갔다.
바지를 찾아달라고 해서 매대 밑의 물건을 뒤적거리는 사이에 벌어진 난장판이었다.
"아주머니 물건 안 살거면 정리한 옷 망가뜨리지좀 마세요!"
라는 외침이 목젖을 타고 부르르 떨다가 도로 쏙 들어갔다.
그래. 톰슨가젤도 가끔은 사자랑 싸우고 싶은 마음이 있을거야.
그래도 풀만 뜯어먹으면서 잘 살잖아?
꾹 참으면서 아주머니의 시중을 들며 하나씩 옷을 접어 정리한다.

형 말이 틀렸다. 어느 백화점이건 아줌마는 똑같다.
똑같이 가격을 보고 똑같이 많이 입어보고 똑같이, 세일해요? 몇프로 세일이예요? 를 묻는다.
우리나라의 자랑은 아줌마의 힘이 아닐까 싶다,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든다.

진찰받는 꿈을 꾸었다.

의사는 녹색 수술복을 입은 채로 청진기를 내 몸 아무데나 휘두르고선,
"가망이 없어요"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 뭐가 가망이 없냐고 물었더니, 그는 내가 홧병때문에 곧 죽을거라고 했다. 백화점 도난 탐지기에 걸려서 취조당하다가 열이 올라서 죽어버렸다는 아줌마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자기는 아무것도 훔치지 않았는데, 기계가 오작동한것 뿐인데
사람들 많은 곳에서 창피를 주니 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아주머니의 명복을 빌면서, 당분간은 런앤런하면서도 무념한 접객태도로 아르바이트 하자.
홧병으로 죽기엔 아직 젊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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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secret2008-01-24 02:35
아 나도 아줌마 됐는데;;; ㅜㅜ
철천야차2008-01-24 08:37
무념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