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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를 아십니까

캐서린2008-01-26 00:38조회 376추천 12
일끝내고 지하철역으로 향하던 도중이었다.
누군가가 뒤에서 내 어깨를 붙잡길래 무심코 돌아봤다.
파란 색깔이 든 안경의 중년 남자였다. 생전 처음보는 사람이었다.  

한손에 쥐고 있는 초콜렛 아이스크림이 무색하게,
나는 쓴맛이 담긴 표정을 지어보이면서 서둘러 말할것을 재촉했다.  

"저기.."
"네"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그는 환자에게 말기암선고를 내리려는 의사처럼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이 나올지는 대충 알고 있었다. 종교나 피라미드, 둘 중에 하나임에 분명했다.
그건 옷차림만 봐도 아는 것이다. 예의도 바르고 왠지 욕이라곤 평생 해보지 않았을 것 같은 선량한 몸짓을 보아도.

"제가 몸담고 있는 곳에 당신과 같은..."

내 두뇌의 미래예측 시스템은 25년 경력의 인생을 헛되지 않게 했다.
남자가 말을 채 꺼내기도 전에 나는 손사레를 쳤다.

"다른 사람 알아보세요"

"아니 잠깐만요"

내 앞으로 다가오려는걸 뒤돌아서 재빨리 피해버렸다.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지하로 내려가고 개찰구 앞에 설 때까지 단 한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평소엔 하지 않던 잰걸음이 무아지경으로 내달리고, 나는 성난 황소마냥 성큼성큼 몇블록을 걸었다.

그러다가 문득 남자의 표정이 떠올랐다. 애처롭게, 혹은 안타깝게, 동정심이 넘쳐흐르는 눈빛이 내 얼굴을 후벼파고 있었다. 그는 과연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전철의 출입문이 열릴 때까지 나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봤다.

"제가 몸담고 있는 곳에...
당신과 같은 사람이 있었어요."
"그 사람도 얼마전에 이별을 했어요."
"매일같이 눈물을 흘린대요"
"정확히는 매일 밤이요"



"그러니까 힘내세요."

왠지 이런 종류의 말이 나오진 않았을까, 해서
전철을 타는내내 마음 속으로 눈물을 뚝뚝뚝 흘렸다.
초콜렛 아이스크림도 눈물처럼 녹아서 내 손등을 타고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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