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담이지만, 영화보는중에 담배를 피우는 것은 좋지가 못하다.
뭔가 집중해서 봐야하는 장면(대부분 에로씬일테지만)이 닥쳐오면
나도 모르게 담뱃재를 아무데나 튕기게 되니까,
내가 잠깐 빌려입은 할머니의 보라색니트가 회색빛이 되기 전에,
담배는 얼른 조용히 꺼주셔야되는게 원칙이다.
어제밤, 하루동안 본 영화는 모두 이렇다.
라디오스타,괴물,욕망의모호한대상(루이스브뉘엘의,)
다케시즈, 마츠코의 일생, 기묘한서커스
욕망의 모호한 대상 같은 경우는 굉장한 걸작이라
내가 뭐라 평을 남기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내가 매일 비급영화에만 글을 써갈겨대는 것은 아니니
언젠간 이 영화에 대한 낙서를 깨작거릴지도 모르겠다.
라디오스타는 생각보다 별로 재밌었다.
박중훈은 워낙 코믹이미지로 나아가다보니 이젠 진지한 연기는
어색할 정도이다. 하지만 이번 가수왕 연기는 꽤나 자연스러웠다.
안중기와 박중훈을 감싸고 도는 훈훈한 정은
영화속 영월주민들을 휘어감는 따뜻한 내음이 되었다.
나도 괴물을 한마리 키워보고 싶다.
오프닝의 그 낚시꾼은 컵밖으로 떨궈진 괴물을 왜 다시 주워담지 않았을까.
내가 키워서 잘 조련했더라면, 송강호 딸이 죽는 그런 불상사는
터지지 않았을텐데, 안타깝기 거지 없다.
다케시즈는 다케시의 광팬을 자처하는 내가
이번 휴가 때 반드시 봐야할 필수 코스였다.
기대를 너무 했던 탓인지 진이 빠진 상태로 영화를 감상했는데,
기타노 다케시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영화를 장난감처럼 잘 다룬다,는
생각이 들었다. 컷을 어떻게 저렇게 나누고 저렇게 조합하는걸까. 신기하다 이 사람.
다케시할아버지와 함께 찾은 다음 영화는 마츠코의 일생과 기묘한 서커스였다.
기묘한 서커스는 내가 옛날, 보이후드시절 많이 보았던
하드코어 서스펜스 타입의 영화였다. 난도질하고 아무때나 섹스하고,
피나오고 전기톱으로 자르고, 하려는데, 기묘한 서커스는 왠지 슬프다.
마츠코의 일생도 기묘한 서커스처럼 한 인격이 파괴되어 가는 과정을
유쾌하면서도 슬프게 대조적인 이미지들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잘 이어나간다.
영화를 다 보고 잠에 빠졌을때, 꿈에서
나는 영월에 있었다. 괴물조련사인 나는
첼로케이스에 갇혀서 기타노다케시가
자기 부하들을 총으로 쏴 죽이는 장면을 목격하고
무서워서 얼른 뛰쳐나오다가 한 여자의 남편이 되고
그녀가 시키는대로 정조대를 차고 잠자리에서
속옷이라도 스치며 뺨을 맞는 그런 남자가 되고말았다.
담뱃재가 책상위를 눈덮기시작할때쯤 나는 내가 구상중인 어떤 이야기를
다시 리셋하기로 했다. 언제나 그렇다. 어떤 영화를,
이건 완전 대박이겠다. 스토리 죽이는데, 라고 혼자 감탄하며
쥐어짜낸 이야기를 나는 언제나 시작도 못해보고 지워낸다.
위의 괴물같은 영화들이 떡 버티고 있는데 내가 뭘 어떻게 덤벼,
뭐 이런식으로 자학하고 내 기억들을 지운다. 잊어버려, 그런거.
그랬더니 오기가 생긴다.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어.
이젠 좀 더 신중해져야겠다. 나는 키보드를 두들긴다.
자신감을 갖자. 누군가가 내 이야기에 글을 다는 날이 올때까지
나는 생각하고 생각한다. 그렇게 나 자신을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