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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하늘에 소리를 지르고 싶다

saac6662003-12-21 05:16조회 1039추천 27



정자(精子)가 밤하늘에 반짝이는 강물로 쏟아진다. 은하수의 별똥들이 대기의 동굴안에서 빛을 발하며 죽어간다. 헤아릴 수 없는 저 불덩어리들. 오늘도 정자가 죽어간다. 축축한 깊은 동굴에서 헤엄을 치다가 지쳐 버림받고 사라진다. ...(중략)... 하늘의 별들이 사라진다. 은하수의 허연 물방울들이 죽어가고 있다. 유월에 피는 밤나무 꽃 냄새가 검은 하늘을 덮는다. 밤꽃처럼 밤송이도 맺지 못하고 마리들이 사라진다. -정자 中-

삶의 아름다움과 이상향을 노래한 책들은 많다. 하지만 나의 가슴에 와 닿는 감정을 뒤흔드는 책은 찾기가 힘들다. 우린 값싼 사탕발림의 말들과 장밋빛의 아름다움을 쉽게 말하는 것들을 거부한다. 하지만 이 책을 접하고 읽었을 때의 느낌은 달랐다. '당신은 하늘에 소리를 지르고 싶다' 는 우리의 삶을 아주 밑바닥부터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들여다본다. 그것은 너무나 적나라하고 무거운 이야기지만 작가는 주변의 일상적인 자그마한 것들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리는 거부감 없이 그의 이야기에 귀기울일 수 있고 결국 나란 사람과 인간의 삶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하게 해준다.

이 책은 작가의 말처럼 짧은 산문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작가는 본래 시를 쓰는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문체에서는 산문이면서도 음을 읽는 듯한 운율을 느낄 수 있다. 또한 그가 쓴 단어들은 그것 자체의 의미도 있지만 보다 함축적이고 간결하다. '간결함과 소박함을 통해 상징성에 도달하고 동시에 언어의 원형에 도달하고자 하였다' 라고 작가는 말했다. 책 전반에 있는 아름다운 비유와 표현들은 역시 작가가 본래 시인인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조금 더 생각하는 그의 생각 덕분인 듯하다. 달을 서술함에 있어서도 "달을 부른다. 초생달. 그믐달. 반달. 보름달. 그리고 멍청한 낮달까지 모두 부른다" 에서 보듯이 낮에 뜨는 달을 멍청하다고 재미나게 표현한다. 그의 섬세하고 시적인 표현들은 모든 산문 전체에 고루 나타난다.

책은 커다란 6개의 카테고리로 구성되어 있는데 (우주이야기, 사람의 길, 바보와 미치광이, 칼은 왜 없어지지 않는가, 환상, 잃어버린 고향) 각각의 카테고리안에는 짧은 10개정도의 산문이 들어있다.

이 책은 탄생과 죽음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한다. 그것은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숨쉬고 있고 디딛고 서있는 이 공간의 이야기이다. 죽음은 곧 어둠이기도 하며 그것은 조금은 슬프고 우울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죽음'을 통해 작가는 '존재'를 이야기하며 결국 그는 우리 삶의 향기를 전하고자 한다. 죽음의 이야기는 빛을 갈망하는 어둠과 같은 것이다.

허옇고 은빛이 부서지고 있는 호수 한가운데 검은 덩어리가 물 위로 올라와 둥둥 떠다니고 있다. 그림자의 주검이다. 호숫가의 소나무 숲이 검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별도 총총한데, 바람소리 하나도 없이 달빛만 흐르고 있는데 주검만이 새로운 덩어리로 밤과 물을 헤치고 있다....(중략)....얼음도 부서져 당신의 그림자는 싸늘한 주검이 되고 이제 그 흔적도 찾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당신 말고 다른 것들이 변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 얼은 호수는 언제나 위험하다 中 -

죽음을 이야기한 편들은 과장되거나 감정에 호소하는 법 없이 너무나 일상적이다. 시간은 흐르고 있으며 그 안에서 일어나는 죽음이라는 과정은 희극적인 요소도 격렬한 몸부림도 없이 서술된다. 그래서 그것은 더욱 우리 가까이에 있고 처절하게 깊이 느낄 수 있다.

그는 스스로의 힘으로 잔잔한 수면 위에 영원한 파문을 그리고 싶었다. 돌을 연못에 던졌다. 짧은 순간 그것은 몇 개의 동심원을 이루어 냈으나 곧 자지러지고 말았다. 조약돌을 또 던졌다. 어떤 때는 모난 돌을 던지고 어떤 때는 매끄러운 둥근 돌을 살며시 밀어넣기도 했다. 그러나 한 순간의 반응 이외에는 연못은 그를 받아들이거나 대답을 하지 않았다...(중략)...그는 땅에 쓰러졌으나 그의 희미한 눈길은 힘차게 퍼지던 둥그런 물결이 연못가에 닿으면서 목숨이 다하는 것을 보았다. 연못은 그것마저 삼켰다...(중략)...어느날 지나가는 길손이 무심코 조그만 돌을 연못에 던지자 놀랍게도 수면위로 무엇인가 솟아 나와 계속해서 뚜렷이 점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쌓이고 쌓여진 돌들이 그 모습을 조금이나마 드러내었던 것이다. 그것은 영원한 마침이었다. - 연못 中 -

굉장히 마음에 드는 '연못' 편이다. 죽음과 존재의 의미를 가슴 저리게 느낄 수 있는 글이다. 작가가 이 '연못' 편을 쓴 것이 1969년 대학교 4학년 때라고 하니 지금의 내 나이이기도 하다. 작가는 극도의 어둠 속에서 지내온 듯 하다. 같은 69년의 그의 글 가운데 '물방개의 일생' 편을 보면

후회와 슬픔에 서럽게 울며 발버둥 쳤으나 그 어느 누가 그의 곡성에 귀를 기울이겠는가. 전신주는 무심하게 솟아 있고 하늘의 구름은 갈 길을 가고 있을 뿐이었다. 최후까지 다리를 꼼지락거렸으나 점차 굳어져 가는 몸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태양이 밝음을 찬란하게 뿌릴 때 결국 그는 자기가 왜 죽어야 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죽어갔다

라는 구절도 나온다. 아마도 그 당시 그의 상태는 어둠을 자신의 빛의 원천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고뇌하고 힘겨워한 듯하다. 하지만 작가의 인생과 이어지는 글들을 보면 그 어둠은 죽어있는 시간이기보다는 몸부침치는 생명력이 꿈틀거리는 생물이 사는 동굴의 어둠과 같을 것이다. 어둠 속에 웅크린 그의 시간들이 있었기에 그는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한줄기 빛의 아름다움을 누구보다 크게 느낄 수 있었으리라. 그것은 사방에 널려진 밝음이 아닌 어둠의 가장 깊숙한 열망으로 만들어진, 뜨거운 불 속에서 달구어져 비로소 만들어진 아름다운 도자기와 같은 것일게다.

'칼은 왜 없어지지 않는가' 카테고리 안에는 약간 다른 죽음에 대한 글들이 실려있다. 이제 죽음은 그를 고독으로 몰고가는 것이 아닌 고발의 대상이요, 까발림의 대상이다. 죽음은 우리 존재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도구로써 그에게 다가온 것이다.

어제는 죽었다. 자고 일어나니 흘러간 시간들이 죽어 있었다. 숲을 달리다가 개미를 죽였다. 여러마리일 것이다...(중략)...바랭이풀과 강아지풀들도 열매를 맺고 누렇게 죽어간다...(중략)...점심은 삼겹살을 굽는다. 핏물이 약간 흘렀지만 언제나 살은 맛있다...(중략)...밤이 다가온다. 하루의 모든 것이 살해되어있다. 칼을 씻는 것은 하나도 없다. - 살해 中 -

그대여, 칼을 축복하고 또 증언하라. 오늘도 칼은 하늘을 향해 뾰족하게 날을 벼리고 있다. - 칼은 왜 없어지지 않는가 中 -


그는 주변에 만연한 죽음을 말한다. 그것은 우리의 아침 식탁에도 있고 출근길 자동차 타이어 밑에도 있으며 흙 속에서 장난치는 아이들의 손 안에도 있다. 그것들을 통해 우리는 오히려 '존재' 라는 것에 대한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는 정신차리고 우리가 인간으로서의 우리를 되돌아 보길 바란다. "허튼 수작일랑은 집어치고 사람이 사람을 변하게 만들도록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해야지. 그래야하지 않아?"(p16) 라는 그의 말처럼 존재하는 우리는 그것만으로도 가치를 가질 것이다.

당신은 오늘 안경점에 다녀온다. 흐린 시력을 보완하여 당신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 당신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비록 우주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 사소한 것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눈 앞의 일이 당신과 상관없이 괴리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마음을 가다듬고 옷길을 여미며 새로운 안경으로 눈앞의 일을 똑바로 쳐다보아야 한다. 그리고 당신은 그런 작업의 주체로 살아가고 있음을 당신은 증명하여야 한다. 그래야 한다. 당신이 우주이고 우주는 당신이다. - 죽음과 에필로그 中 -

죽음에 관한 그의 서술들은 이제 우리에게 우울함이 아닌 힘을 불어 넣어준다. 그것은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힘의 원천이다.

[바보와 미치광이] 카테고리는 이 책에서 꽤나 특이하고 재미난 부분이다. 음악으로 치면 싸이키델릭 적인 것과 같다고 할까? 바보와 미치광이, 미친 그림자, 웃음과 울음의 탈 등 비현실적인 눈을 통해 바라본 이 세상을 재미나게 풀어쓰고 있다. 필시 내 생각엔 작가가 술이라도 진탕 먹고 쓴 카테고리가 아닐까 싶다. 그러한 눈을 통해 세상에 널려진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마지막 카테고리인 [잃어버린 고향] 은 우리 주변에 잊혀져가는 것들을 통해 다시 존재라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책 전체에 걸쳐서 나타나는 많은 동,식물의 비유처럼 이 장에서는 졸고있는 흰벌개미취, 빌딩에 걸려있는 달, 비를 맞고 있는 냉이꽃 등 주변의 보기 쉬운 정감있는 것들을 떠올리게 하며 비유적으로 우리네 삶을 이야기한다.

우리들은 외쳐야 한다. 거리에서 아니면 아파트의 커튼을 젖히고 베란다에 서서 공기를 힘껏 들이마시며, 함께 가슴에 숨어 맺혀 있던 그리움의 소리를 밖으로 내뿜어야 한다. 우리들의 외치는 소리가 멀리 벌판으로 울려가 우리들의 잃어버렸던 친구들의 노래가 되어 되돌아 올 때까지, 그리고 우리의 소리가 하늘로 올라가 별들에 부딪쳐 그들의 반짝이는 노래가 메아리 되어 돌아올 때까지 목이 쉬도록 외쳐야하리. - 일산 이야기 中 -

작가는 여리디 여린 순수한 인간형이다. 아름다움을 찾고 삶의 의미를 찾는 우리 인간의 모습이다. 그는 그러한 모습을 어떠한 겉치레의 꾸밈이나 작위적인 상황설정 없이 우리에게 그림을 그리는 듯한 묘사로 풀어놓는다. 친숙한 자연의 모습과 우리 일상의 모습으로 이뤄진 글들은 부담없이 스며들 듯 우리에게 다가오고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글을 글자가 아닌 하나의 사람으로 하나의 우리 인간의 모습으로 느끼게 한 잊지 못할 기억이다. 텍스트란 도구가 이토록 가슴 저미게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기쁜 무엇인가의 가능성의 확인이었다.

작가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하나의 인간이다. 작가야 자신의 이야기를 썼지만 글을 읽은 독자로서는 작가에게 이런 책을 쓴 것에 감사한다.

그분은 내 아버지이다.

당신에 대한 생각은 곧 나란 사람. 우리네 인간을 향한 진지한 즐거움이었습니다.



12.21
사랑하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아들 병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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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재채기를 참고있어2003-12-23 02:28
한번 클릭하고 읽다가. 나중에 일거야지! 하는 생각으로 미뤄두었다가 지금 다시 읽게되었어요. 감사합니다. 아버님만큼이나 멋진 분 이란 생각 드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