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잘스는 1902년(25세)까지 활발한 작곡 활동을 보였고 그의 선생님들도 카잘스의 작곡 능력을 높이 평가하여 그가 첼리스트이기 보다는 작곡가의 길을 가길 바라고 종용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1902년 이 후부터는 연주가로서 크게 성공을 거두며 작곡보다는 첼리스트로서의 경력이 주요하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시대가 첼리스트로서의 그를 요구했던 것입니다.
1932년 Montserrat 수도원에 헌정 하기 위한 성가곡들을 작곡하면서 다시금 작곡 활동을 시작했고 이 후 프랑코의 독재에 항거하여 공식적인 연주 활동을 접었을 동안에도 여러편의 작품을 작곡했습니다.
1962년에 카잘스는 그가 전쟁중에 작곡한 평화의 오라토리오 'El Pessebre'와 함께 평화운동을 시작한다고 공표하고 타계하기 직전까지 오케스트라와 함께 전세계를 다니며 음악으로써 평화 운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아티스트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다. 인간으로서 내 첫번째 사명은 동시대인들의 복지를 추구하는 것이다. 신이 나에게 준, 언어와 정치와 국가들의 경계를 초월하는, 음악이라는 수단으로 그 사명을 다하도록 나는 노력할 것이다. 어쩌면 내가 세계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작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할 것이다." - Pablo Casals
카잘스는 자신이 죽기 전에는 자신의 작품을 출판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작품이 살아남든 시간속에 사라지든, 그것은 온전히 그 작품의 작품성에 달린 것이지 연주자인 자신의 명성이 작품 평가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Montserrat 수도원의 성가대를 위해서 작곡한 종교음악에 대해서는 출판을 허락해 그가 생존해 있을 때 출판되었고 'El Pessbre' 또한 그가 타계하기 몇 달전에 출판되었습니다.
현재 레코딩, 발매 된 그의 작품으로는 'El Pesebre'와 Montserrat 수도원에 헌정된 성가곡들인 'O vos omnes', 'Nigra sum', 'Eucaristica', 'Salve Montserratina' 등이 있습니다.
이 작곡 리스트는 H. L. Kirk가 카잘스의 미망인 Marta의 도움으로 카잘스 사후에 그의 집에서 발견 된 악보들을 기초로 작성한 리스트를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빠진 작품들도 많을 것이라 예상되지만 1892년부터 1972년까지의 작품 중 지금까지 발견된 주요한 작품들은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http://www.happychron.com/casals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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