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자화상.
adik2005-09-09 16:15조회 1251추천 72
제목에 사실은 '아빠'라고 쓰고 싶었다. 그냥...아빠라고 부르니까..
어렸을때 나에게 아빠는 약간 '무서운' 존재였다. 항상 일만 하시다가, 어쩌다 강제로 얻은 '휴일'이랍시고 가족들을 동원하고 딸들을 억지로 손잡아서 장을 보시는...왠지 부담스러운 분위기에 난 압도되는 것이 낯설고 싫었다.
아빠에게 처음으로 '인간'적인 면을 발견한 시점은 중학교 1학년...즈음이었던 같다. 항상 승승장구만 하실것 같은 분의 눈에게서 처음으로 '눈물'이라는 것을 보았고, 머지않아 내가 아빠를 향해 가졌던 낯설음은 깨지기 시작했다. 내가 목격한 아빠의 눈물은 그 순간부터, 우리가족에게 영원한 방향전환을 강요하게 되었다.
...
아빠는 이제 눈물을 밥먹듯이 흘리신다. 드라마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하나하나 보시면서 우시고, 친구들얘기를 하시며 우시고, 자기 딸들이 당신 맘대로 안된다고 하소연하시며 우시고, 그렇게 썰렁하게 대하셨던 큰아버지의 부고를 바다건너 전해듣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신다.
오늘도 난 아빠에게 전화를 한다. 야근과 수업에 목소리가 갈라져서 집에 돌아와 이제 발뻣고 잘일밖에 안남았다고 생각할때...난 언제나 아빠한테 전화를 할수있다. 저 멀리서 아빠는 이제 점심을 들고 계셔서 목소리에 행복함이 스며있다. 음식을 씹어먹는 '사각사각'소리와 함께 '둘째냐~' 하는 소리가 들리고 옆의 엄마가 손님을 맞는 특유의 영어실력이 멀리서 들릴때...나의 상상속은 잠시나마 행복하고 그 한가지 이미지 뿐이다.
아빠한테 난 10분동안 4살 어린아이가 되어서 투덜거린다.
- 학생들이 뺀질거려서 수업을 한바탕 뒤집고 왔어. 어뜨케 머리가 커질수록 말을 안듣냐 애들이.
- 시공하는 사람들이 자기맘대로 벽을 마감해버렸어. 도면대로 해달라니까 안해줘.
- 어제 새벽부터 현장에서 서있어서 발이 퉁퉁 부었어.
- 내가 '아'라고 얘기할려고 그랬는데 저사람은 '어'라고 알아들어버리네.
- 원칙대로 하면 왜 안되는데?
아빤 씹을것 다씹으시면서 천천히 다 들어주신다. 결국엔 내가 나의 푸념에 지쳐 아빠한테 묻는다.
-아빠 뭐먹어?
-옥수수
-애걔..그게 점심이야?
-아니 점심먹고 후식먹는거야.
-맛있겠다...
-그래. 수업은 잘되고?
-그냥...(다시 쨍알쨍알..)
-야야. 목소리 다갈라진다. 그 얘기들 다 저장해뒀다가, 나중에 얼굴보고 다 하자. 피곤하니까 얼릉자.
-...응......... 별일없어요?
-별일없지. 넌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냐.
-그럼 당근이지.
-니가 참 그러겠다. (한숨) 밥은 꼬박꼬박 챙겨먹고!! 빨랑 보이도 사귀고!! 얼릉와.!
-...네.
전화를 끊으면서 나의 하루는 더 이상 10분전의 하루가 아닌 새로운 하루로 마감이 된다.
이젠 정말.....발뻣고 잘랜다.
이 글의 주인이신가요?
댓글 6개
녀찬2005-09-11 15:59
아버지...ㅠㅠ
네눈을줘2005-09-11 16:40
나한테도 저나해요 누나 자기전에 ㅡ.ㅡ
mimi2005-09-12 08:57
왠지 언니 아버님의 모습이 상상되네요...
그냥 좀 서글퍼요.. 이런 얘기... 저도 다정한 딸이 못 되어서.... ㅜ.ㅜ
그냥 좀 서글퍼요.. 이런 얘기... 저도 다정한 딸이 못 되어서.... ㅜ.ㅜ
adik2005-09-14 09:30
아버지라는 존재가 좀 그런듯...저도 뭐 그리 자연스럽진 않지만...그래도 왠지 나이가 들면서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에요.
야차/나 루이칸영화 좀 너무 감동먹었어...ㅋ 아들과 아버지는 또 다르겠지..
네눈/저나하마.ㅋ
미미/나도 서글퍼..항상 부족해서..
야차/나 루이칸영화 좀 너무 감동먹었어...ㅋ 아들과 아버지는 또 다르겠지..
네눈/저나하마.ㅋ
미미/나도 서글퍼..항상 부족해서..
상Q2005-09-14 15:53
내 바깥에서의 성격이 가족들에게 그대로갔으면 좋겠삼;;
저도 울아빠랑 더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쫌 서먹서먹해서리...
누나 아빠는 멋진 분이신 거 같음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