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n 인터뷰 제 3부.
밴드는 이 앨범의 첫 몇 부분을 사과 창고를 개조해서 만든 그들의 연습실 스튜디오에서 96년에 녹음하기 시작했다. 9월에 라디오헤드는 여배우 제인 세이무어의 맨션인 성 캐트린 대저택을 임대해서 그들의 모든 장비를 옮긴 후에 그곳에서 녹음을 시작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처음에는...
"천국과 지옥이 동시에 있었죠." 요크는 말한다. "거기서 있었던 처음 2주간 우리는 앨범의 전체 곡들을 다 녹음한거나 다름없었어요. 그 다음이 지옥이었죠. 그 집은...." 요크는 잠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 중압감을 느끼게 했어요. 처음부터 그 집은 우리에게 흥미가 있었고, 그 다음엔 우리때문에 지루해졌지요. 그리고 나서 그 집은 모든 걸 다 어렵게 만들기 시작했어요. 스튜디오의 테잎 머신을 켰다 끄고 그리고 다시 되돌리는 짓을 하기 시작했지요."
그 집이 귀신이라도 출몰했다는 소리예요?
"네. 근사한 집이었지요. 게다가 그 집은 바쓰(Bath, 런던 근교의 전원도시. 관광지로 유명)
근교의 뭐하나 없는 곳의 중간 계곡에 있어서 우리가 연주를 끝낸 후에는 모든 것이 완전히 순수한 정적 그 자체였어요. 창문을 열면 아무 것도 없었지요. 완전히 부자연스러운 정적이랄까. 새들조차도 지저귀지 않았어요. 정말이지 더럽게 무서웠어요. 난 제대로 잠 한번 못 잤으니까. "
라디오헤드는 마침내 1997년 2월에 들어서야 녹음과 마스터링을 끝냈다. 그들이 그 앨범으로부터 약간의 거리를 취한 이후에 그들은 그것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열한시쯤에 우린 우리가 무얼 했는지를 깨달았어요. " 요크는 인정한다. " 우린 우리가 정말로 메쓰꺼운 이런 앨범을 만들어낸 데에 대해서 불안해졌지요."
"Creep"같은 노래는 말할 것도 없고 기존의 싱글들과도 최소한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들리지 않는 OK Computer의 모든 노래들에 대해 캐피톨 레코드사의 사람들도 처음엔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이제 모든 사람들은 어느 정도 마음을 굳혔다. 캐피톨사의 사장인 게리 거쉬는 라디오헤드에 대한 질문을 받자 이렇게까지 말했다. "우린 그들이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밴드가 될때까지 아무 것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실제로 아직까지도 라디오헤드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팬들이다. 요즘 요크는 그에 대해 염려하는 내용의 편지를 많이 받고있다. 어떤 편지에는 그가 긴 휴가를 받아야 한다는 제안까지 담겨있을 정도이다.
"어떤 점에서 난 어떤 류의 인생을 찾을 필요가 있어요." 그는 조용히 말했다. "내 말은 팬들의 누군가가 나에게 제대로 살아야 한다고 편지를 써오면 그 말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는 소립니다."
당신은 당신의 팬들이 OK Computer 를 들을때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지금 생각중인데요."
요크는 잠시동안 말을 멈추었다가 좀더 따뜻한 느낌으로 살짝 웃는다. 그 미소는 그가 실제로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는 의미로 보인다.
라디오헤드 투어의 마지막 날 밤에 밴드는 브라이튼의 해변가의 공연장에서 연주했다.
송가적인 코드가 넘실거리는 "The bends"에서 정신분열증마저도 우아한 "Karma Police"까지 그들은 섬세하고 몽환적인 싸이키델리아와 절규하는듯 지글거리는 기타의 돌풍사이에서 끊임없이 오가며 연주했다. 톰 요크는 큐비즘 화가의 그림에서 나올듯한 예수처럼 그의 팔을 펼쳐 보이기도 했고 때때로 관객들의 신청곡을 받아 연주하기도 했다. 마이크에 대고 그가 한 두 번째의 것은 다음과 같은 말이었다. " 서로 옆으로 밀치고 하지 마세요. 그렇게 하면 누구라도 아래에 깔리게 되니까... 이건 축구시합같은게 아니잖아요. " 세 번째로 그가 한 말은 " 그리고 그 크라우드 서핑같은 짓도 하지 말아요. "
***록 공연장내에서 관객들간에 서로 심한 몸싸움을 벌이거나 밀치는 것을 moshing pit을 만들어낸다고 하며 흥분한 관객이 스테이지 위로 올라갔다가 관객들의 머리위로 떨어지는
stage diving, 그리고 관객들의 머리위로 아예 돌아다니는 crowd surfing등을 극력 반대하는 록 밴드들도 많다. 이것은 그런 관객들의 행동이 록 에너지를 더욱 증폭시키며 록 라이브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밴드들과 반대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다 더 약자에 대한 배려에서 나온 생각이 지배적.../Loser
그러자 그들은 꽤 흔쾌히 그의 말에 따른다. 그들은 대체로 안경을 쓴 남학생들이나 수작을 걸어 보려는 여자애들이었다. "범생이들". 도서관에서나 만날듯한 귀여운 한 커플이 내 옆에서 라디오헤드가 템포가 느린 곡을 연주할때 마다 열렬히 껴안았다. 내가 그들에게 말을 걸어 보려고 하자 그들은 신경질적으로 키득거리면서 말도 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을 보여줬다.
공연이 끝난 후에 나는 보름달이 뜬 해변가에 서서 백스테이지에서 만난 팬들과 함꼐 서 있었다. 그들은 바보처럼 웃어대면서 대서양 바다에 돌을 던져댔다. 그 팬들중의 하나는 마이클 스타이프였다. 이 브라이튼에서의 공연이 그가 지난 주 부터 해서 세 번째로 본 라디오헤드의 공연이었다.
"그들은 레딩 페스티벌에서 금요일날 밤에 연주를 했어요. 그리고 금요일날 공연하는 밴드들은 절대로 연주를 망칠 수가 없지요. 왜냐하면 금요일날 공연했던 모든 밴드들은 정말이지 끝내주는 사람들이었으니까요. " 그는 내게 말했다. " 하지만 라디오헤드는 그중에서도 최고였어요. 우리가 그들과 2년 전에 공연을 했을 때 그들은 매일 밤 "Creep"을 연주했어요. 근데 이제 그들은 그 노래를 그들의 팬들로 부터 되돌려 받고 있지요. 그들은 정말이지 그 노래를 아름답게 부르고 있어요."
스타이프는 그 노래를 언급하면서 그 노래의 기타소리가 콩코드 비행기 소리처럼 들린다고 말했다. 그 엄청난 힛트곡은 5년 전에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라디오헤드가 한 번만 반짝하고 사라질거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마이클 스타이프가 맞았다. 그날 밤 부른 "Creep" 은 정말로 멋졌다. 감미롭고 느렸지만 세세부가 다 비통하게 느껴졌다. 요크는 즉흥연주까지 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는 코러스 부분의 "나는 미친놈이야.(I'm a wierdo)" 에서 "나는 승리자(I'm a winner)"로 가사를 바꾼 것이다.
[The end of th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