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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id+의 자서전-#2(mistreated)

acid+1999-01-02 13:43조회 0
누가 이런 글을 읽어줄까 의구심이 들긴 하지만...
그래두 속에 품고 있는 것 보다야 털어 놓는게 좋겠다 시퍼서 이렇게 연재(?)를 시작하려구 합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 저랑 생각이 같은 분이 있으셨음 좋겠네요. 또 그게 이 글을 쓰는 궁극적인 목적이기두 하구요.
rh의 stop whispering을 들으면서 저는 넘 통쾌하더라구요. 제가 선생님들한테 하구 싶던 말이 바로 그 말이였거든요.
저는 항상 전교 2등(제발 자랑하는게 아니란걸 알아주세요. 저한테는 별로 기쁜 일이 아니라서..)만 했던 평범한(?) 중딩이였죠. 지금은 백수.. 좀 있으면 고딩이 되긴 하지만, 그래두 아직은 백수..
저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냥 #2 였지..
학교만큼 사람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곳이 또 있을까 합니다.
오늘은 #2의 애환(?)을 말씀드리죠.
저는 솔직히 1등, 2등... 선생님들이 만들어 놓은 석차체계에 별로 동요를 하지 않는 사람인데요..
마치 언론이 오아시스와 블러를 싸움 붙인 것처럼 저도 그랬어요.
저는 전교 1등, 즉 코드번호 #1이란 애를 잘 몰라요. 관심도 없구요. 별 경쟁심도 들지 않더군요. 난 #2가 그냥 내 운명의 수구나..하면서 당연하다는 듯이(?)-왜냐면 저는 범생이가 아니거든요. 그정도 공부하고 그정도 받으면 감지덕지라고 생각했지요.-여겼죠.디
그런데 선생님들이라는 작자(?)들이 너도나도 나에게 한마디 하더라구요.
너 그렇게 해서 1등 하겠냐고요.
기가 막히더라구요. 누가 1등 한다고 그랬나? 자기들이 왜 내 목표를 좌지우지하는지...
거기서 그치면 다행인데, 다음에는 강도가 심해지더라구요.
너 그것도 공부하는 거냐고, 너무 공부 안한다고, 그게 너랑 #1의 차이점이라고... 한마디로 '비교'를 시작한 것이었어요.
#1의 특권이 뭔지 아세요? 그건 약간 인간존중이 실현된다는 거에요.
최소한 그 애는 이름이 알려지고, 선생님들에게서 약간의 프리미엄도 얻고 그러는 거죠.예를 들어 뭘 잘못해도 #1이니까 덮어주고 그러는 거 말이예요.
저도 들은 말이지만...
그 애는 화장실을 갈때도 책을 들고 가고 벌을 서면서도 책을 보고 공부를 한다고 하더라구요. 싸이코...
근데 벌을 서면서 책을 볼수 있다는게 무슨 뜻인지 아세요?
그 애만은 벌에서 제외된다는 거예요. #1이 무슨짓을 하든 그애는 다르니까 봐주는 거더라구요.
저는 그 말을 듣고 촌지가 교육을 망치는게 아니라 차별이 교육을 망친다고 생각했죠.
그 애의 성적은 그 애의 인격까지도 보완하고도 남더군요.
친구들한테 욕하고 시켜먹고 무시했던 그 애의 단점은 성적으로 정말 다 가려지더라구요. 선생님들은 아직도 #1이 착하고 예절바른 앤줄 알껄요. 아마 죽기전까지 모를거에요. 당연하지...
언젠가 기술 보충시간때 프린트를 줬어요. 풀려고 보니까 벌써 다 풀었더라구요...근데 그게 선생님이 푼게 아니라 #1이 푼거더군요. 저를 비롯한 40명의 아이들은 어이가 없어서...
선생님의 그 다음 말이 예술...
"틀린거 찾아서 따질려면 xx(프라이버시 존중 차원에서..)한테 따지구, 지금부터 틀린 거 있나 찾아봐."
선생님만 없었어도 프린트를 확 찢었을 거예요. 그치만 그전에 선생님 앞에서 교과서 찢다 엄청난 결과를 초래해서..
요 며칠 전, 아니 벌써 한달이 다 돼 가네요.
부천은 아시다시피 연합고사로 고등학교를 가요. 저도 그때쯤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공부를 해서 목표한 고등학교에 수석으로 붙었어요. 물론 #1두요.
(저는 여고를 가고, #1은 남고를 가서..)
처음엔 너무 기뻤죠. 근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 하나씩 터져나오더라구요.
엄연히 제가 먼저 수석통보를 받았는데, 교무실이건 현수막(우리 중학교가 별로 공부를 못하는데 수석2에 차석2이 나와서 몇십개 붙였더라구요. 넘 챙피했어요.)이건 항상 제 이름은 그 애 이름에 눌려서... 속상했어요.
그치만 그건 새발의 피도 아니였습니다. 그다음의 100만원 사건...
우리 둘이 수석을 하니까 #1네 엄마가 울 집에 전화를 해서 '선생님들 식사 대접비'로 100만원을 요구하더군요. 뜨아~
엄마는 애써 숨기려 하지만 얼굴에 '걱정,부담'이라고 환하게 써있는걸 누가 모르겠어요.
그날 친구집에 전화해서 난생 처음 '죽고싶다'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엄마 앞에서는 강한척, 내가 알아서 한다고 했지만 친구 앞에서는 솔직해 지더라구요. 내가 수석해서 엄마께 짐을 안겨드린다면, 그런 수석이란 표딱지는 없는게 낫다는 생각도 들구.. 공중전화에 700원을 날려가면서 두눈에서는 눌물이 줄줄흐르고... 또 울고 들어가면 엄마가 따라서 우실까봐 동네 3바퀴를 돌다 들어갔죠. 다행히 그 사건은 해결이 됐지만... 아마 제 일생에서 가장 가슴아픈 기억이 될 거 같아요.
그날도 저는 lewis(mistreated)-제가 슬플때 열번씩 계속 듣는 노래&가장 조아하는 노래-를 한 스무번 들은 거 같아요.
그 다음날 학교에 가서도 애환은 계속되었습니다. #1네 엄마가 주최한 저녁만찬이 그렇게 푸짐했었던지, 그날 아침 선생님들 모두 배가 아프다고 하더군요. 그 모습을 보며 저는 또 혼자 울었구요. 그 순간, 선생님들이 진짜 잔인한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줄이죠. 제 눈에서 또 눈물이 나고 있거든요..그럼 빠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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