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글 보기

매력빵점

캐서린2004-06-12 14:00조회 333
요즘 자아성찰을 하고 있다.

라고 말하면 거창하지?

요즘 내 자신에게 질문하는 횟수가 많아졌다.

'너 아까 점심 먹었지?'
내가 치매에 걸렸는지 안걸렸는지의 여부를 묻는 경고성 퀘스천에서부터,
넓게는 '너 왜이러니?' 하는, 인간,자연과의 미스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관찰까지,
그렇게 자기에게 질문하는 버릇이 심해졌다고.

그래서 사람들은 날 '자폐아'라고 부르거나,
단순하게 '이상한 놈'이라고 지칭하면서,
피하거나 아니면 대놓고 놀리거나,
그게 아니면 수근대거나 혹은 비웃거나 한다. 난 그런 반응에 별로 신경쓰진 않는다.

오로지 '대답'에만 신경을 쓴다.
질문이 있으면 당연히 답을 내야하는데, 난 그게 잘 안된다.
'모르면 선생님께 물어봐라' 하는 단순무식 초등교육을 받아온 나로서는,
똑똑해보이는 아무나 붙잡고 내가 나에게 했던 질문을 상담하고 싶지만,

"형."
"왜?"
"나 아까 점심 먹었지?" or "나 왜이래?"

그렇게 되면 아마 20여분 뒤엔,
엠뷸런스가 오고, 우락부락한 아저씨 둘이 내려서 날 잡아갈지도 모른다.

그런 두려움때문에 난 속으로 끙끙 앓으면서 나에게 '질문아닌 질문이 되버린 질문'을 내뱉는다.
물론 '나 아까 점심 먹었지?'하는 단순한 문제는
조금만 곰곰하게 생각해보면 금세 답이 나오지만,
'나 왜이러니?'하는 건 하루를 꼬박 새어도 해결될 것 같지 않단말이다.
이럴땐 수학처럼 정확하게 답이 나오는 문제들이 부럽다.

그래서 난 모든 질문에 수학처럼 '수치'로 대답하기로 했다.

"나 아까 점심 먹었지?"
"80"

"나 왜이래?"
"40"

만점을 100으로 보고 마치 시험지 채점처럼 점수를 매기는 것인데, 이상하게도 대충 대답이 만들어진다.
'너는 아까 뭐뭐를 해서 뭐뭐를 만든 다음 점심을 먹은 것 '같다''라고 말하자면,
대충 먹은 듯 한데, 메뉴는 뭔지 모르겠으니까 80점이다! 이렇게 되는거지.

여태까지 그렇게 잘(?) 생활해 왔던 것 같다.

언젠가 나는 사랑에 빠졌다.
아니 사랑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남발하지 말자.
언젠가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안타까운건지 좋은건지, 난 꽤나 솔직한 성격이라,
좋아하는 감정이 7,80점을 넘으면 곧바로 대시를 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9,100점을 넘으면 대시를 못한다)

난 술을 마셨다! 그러면 솔직한 성격이 두배가 되어
상대방과 둘이서만 있으면 곧바로 '좋아한다'라고 고백해버린다.
난 어두컴컴한 밤에 학교 가로등 밑에서 좋아한다라고 말해버렸다.


그리고 곧바로 차였다.


이후로도,
그 사람을 놓치기 싫다는 생각에 계속해서 고백했다.
얌체같지만, 전에 차인 기억은 술때문에 일부러 까먹은 척 했다.

그리고 차였다.
계속 차였다.
그녀 앞에 설때마다 내가,
축구공이나 하키풕, 컬링, 테니스공, 구깃한종이덩어리,깡통 (등)이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점점 속상한게 70점을 넘기시작했다.

세번째 차였을때 난 혼자 화장실에 들어가 조금씩 울먹였다.
그리고 오랜만에 나에게 질문했다.

"내가 그렇게 매력없니?"

취기때문이었는지, 그 질문은 곧바로 머릿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이리저리 겉돌았다.
맨 처음엔 발톱으로 들어가서 온 발가락을 쑤시고 다니다가,
종아리를 타고 올라가 배꼽으로 다시 튀어나왔다.
배 위를 떵떵거리던 '내가 그렇게 매력없니?'는 곧 배꼽으로 도로 들어가서
여러곳을 배회하다가 심장을 만났다.

'내가 그렇게 매력없니?'는 심장에게 물었다.
"내가 그렇게 매력없니?"
그러자 심장이 (머리와는 다르게) 곧바로 대답했다.

"빵점"


  
이 글의 주인이신가요?

댓글 12

김세영2004-06-12 14:05
ㅠㅠ
Pyramid;Karma2004-06-12 14:11
..................ㅠㅠ...
Meditation2004-06-12 14:18
에휴..;;
캐서린2004-06-12 14:33
이런 반응을 바란게 아니었는데.
난 솔직히 빵점은 아니다.
한 4,5점 정도?
김세영2004-06-12 14:50
빵점이란 말이 가슴에 더 와닿아요
나이트초퍼2004-06-12 16:25
아네요. 고백만해도 백점인걸요.
개미2004-06-12 22:03
캐서린님 올리시는 글들 보면 100점인데 .. ㅠㅠ
oxicine2004-06-13 01:47
무슨 쥐스킨트 글 같다는;
밀키스2004-06-13 05:36
나에게 아무리 많은 매력이 있더라도 상대방이 느끼지 못하면...
KIN인듯..
암울한생물2004-06-13 05:39
읽으면서 반성을 많이하게돼요
2004-06-13 15:12
고백한다고 해서 용기있는 무엇을 했다고 해서 전혀 달라지는 건 없는 것 같아요.
훙....
D2004-06-14 13:00
어떻게보면, 고백하는 게 더 치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신이 좋아한다고 말함으로써 속이 시원해지겠지만, 그 상대방은 갈등 내지는 신경이 쓰일테니까요.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