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시간
캐서린2007-11-02 15:00조회 441추천 14
날이 추워서 옷을 꼭 껴입고 밖을 나섰다.
일부러 햇빛이 얼굴 정면에 비추도록 해서 걸었더니
잔뜩 찡그릴 정도로 눈이 부셔서 가을이란 계절이 무색했다.
연극의 맛에 빠진 것은 교양과목으로 연극을 수강하면서 부터다.
영화에만 관심있었지, 연극이란 흐리멍텅해지기만 하는 나에게
이번 과목은 나에게 정면으로 비추어지는 햇빛같은 존재였다.
혜화역 1번 출구를 빠져나가,
번화가 사이에 이상스럽게 놓여져 있는 소극장 안으로 조심스레 들어갔다.
이번엔 멜로드라마,라고 했다. 이번 연극은, 월화드라마의 연장선인가.
전철로 오면서 쭉 그렇게 생각했다. 8시에 공연이니까 일일드라마일지도.
법과 윤리에 반하는 운명의 굴레 안에서
사랑의 힘에 이끌려 허우적대는 5가지 인간상들이
이쪽저쪽으로 선을 대다가 결국 처참하게 끝을 맺는,
딱 제목만큼의 연극. 재밌다. 재밌다. 출구쪽 계단으로 발을 대면서 연신 중얼거렸다.
다섯 중에 하나가 무대 위에서 연기를 펼친다.
많은 관중들 중에 하나인 나는,
객석에 화분처럼 놓여져 그녀의 몸짓과 목소리를 멍하니 눈으로만 좇는다.
눈을 마주치고 싶다, 고 생각했다.
한번만이라도, 저 여자와 눈을 마주칠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나는 화분 밖으로 튀어나와
얇은 뿌리 달린 발로 춤이라도 출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윽고 내 눈에선 손이 뻗쳐 그녀의 몸을 보듬었다.
입술을 만지고 얼굴을 쓰다듬으며
나는 그녀와 일체가 되는 기분을 느꼈다.
그래. 재밌어. 재밌어. 친구가 대꾸했다.
나의 비밀카드란 가령 그런 것이었다.
머릿속으로 온갖 능욕스런 짓을 해야 비로소 나는 존재할 수 있었다.
그녀의 마음을 이내 내것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 때면
나는 격정적인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를 완전히 흡수했다는 만족감에서였다.
나는 왜 연극을 사랑하게 된 것일까.
또다른 인생을 연기하는 인간군상들을 경험적으로 체득하기 위해서?
아니면 단순히 예쁘고 사랑스런 여배우를 찾기 위해서?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연극을 통해 나는 존재감을 느끼고
이로써 시간을 함께 흘러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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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능력은 가브리엘~